국내 미술시장을 선도했던 고미술시장이 침체된 지 오래다. 가격은 예전보다 10분의 1로 떨어졌다. 현대 미술시장에 비해 낙폭이 심하다.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만큼 고미술에 대한 신뢰도도 땅에 떨어졌다. 가짜가 진품으로 둔갑하고 가짜 감정이 판쳐 자연스럽게 불신의 벽이 높아진 것이다. 중국 북한 등지에서 들어온 고미술품들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하다. 대부분 가짜다. 전문가는 물론이고 평생을 고미술업계에 종사한 업주들까지 속아 넘어갈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높은 가격으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김종춘(65) 한국고미술협회장은 “고미술에 대한 애호가들의 관심이 떠난 지 오래다. 모두 서양 그림에만 눈이 가있다”며”고미술품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1억 원짜리 도자기를 1000만 원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지금도 가짜 중국 도자기를 높은 가격에 사는 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최근 고미술업계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고미술협회가 한국문화유산아카데미 고미술문화대학(이사장 최동섭)과 함께 중국의 감정전문가들을 초청해 특강과 강연회를 여는 것도 이와 같은 현실을 타계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다.
최근 중국 고도자(古陶瓷) 감정가인 예페이란(76) 고궁박물원 연구원을 초빙해 ‘중국 도자의 감정과 수장(收藏)’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예페이란은 징바오창(敬寶昌)과 함께 중국 도자 분야의 최고 감정가로 평가받고 있다. 1956년부터 43년간 베이징 고궁박물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고자기의 정리·보존·감정을 수행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루밍화(陸明華) 상하이박물관 연구원 초청 ‘원대 청화자기 이해와 감정’이란 특강도 열었다. 고미술문화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가짜에 속지 말라고 중국 감정 전문가들을 초청해 교육을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고미술문화대학이 앞장서서 옥석을 가려줘야겠다고 판단했다”면서 “특강내용은 ‘가짜와 진짜 구별법’과 중국 고미술품에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고미술문화대학 개설, 이어령 등 유명 강사진 포진 ‘고미술 문화대학’은 2006년부터 김 회장이 힘을 쏟고 있는 감정 아카데미다. 고미술품의 진위 구별이나 가치판단 능력을 길러주는 16주 과정의 이 대학은 지난 7년간 수료자가 1400명에 달한다. 매 기수당 100명 모집에 평균 경쟁률이 3대 1을 웃돌 정도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윤용이 명지대 교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유명 강사들이 포진했다. 수강생들은 기업 최고경영인을 비롯해 금융회사 임원 교수 변호사 검사 등 사회 지도층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선인들의 장인정신과 전통문화가 귀하다는 것에 눈을 뜬 미술애호가들이 많아 보람 있다”는 김 회장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발굴과 보존은 금메달 만개 딴 것보다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일반인도 어느 정도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며 “예페이란을 다시 초청해 무료로 중국 도자기 감정 설명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남은 임기(2015년)동안 ‘가짜와 전쟁’을 계속 벌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불신의 벽이 상당히 높게 쌓였다. 그는 허위 감정 등의 의혹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수차례 검·경의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김 회장은 “모든 것이 투명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사실 내가 조그만 잘못이 있었다면 벌써 인생이 끝났을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는 1997년 18대 회장으로 취임 후 17년째 고미술협회를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제 2인생을 고미술문화대학에 전념하겠다. 내년엔 고미술문화대학을 특수대학원으로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강남 쪽에 설립할 것이다. 부지 선정 등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공신력 있는 감정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