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리가 약이 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가 본보기다. 초대 손님의 허점이나 과거의 실수, 미공개 이야기를 숨김없이 그대로 폭로한다. 순수한 인간적 면모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초대 손님도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시청자들에게 가식 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호감을 느끼게 한다. 출연자들의 이미지는 방송 이후 긍정적이 된다. 장점을 부각하는 일반적인 어필의 방식과는 정반대다. 허물을 벗기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어 더 돋보이게 한다. 역발상의 성공사례이다. 호평은 수용이 쉽다. 그러나 혹평은 인정하기 어렵다. 혹평은 비평의 일부이다. 비평의 본질은 대상에 대한 관심이자 분석이다. 호평과 혹평 모두 가치부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라디오스타’는 혹평을 통해 웃음을 자아냄으로써 초대 손님에게 치유의 시간을 준다. 오해나 편견이 더욱 증폭되지 않도록 의구심도 없앤다. 결점에 대한 빠른 인정과 고백은 무엇인가를 잃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뿐히 새롭게 걸어 갈 수 있는 길을 얻는 것임을 보여준다. 혹평을 유쾌하게 풀어가는 방법에 영감이 될 만하다.
미술계에서도 비평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좋은 전시, 작가의 성장에 있어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여러 각도의 평론이다. 미술작품에 대해 절대적인 평가의 잣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치를 쉽게 가늠하기 힘든 이유다. 비평가는 작품이 역사적으로 어느 위치에 놓일 수 있는지 혹은 조형적으로 어느 지점에 주목할 만한가를 분석해서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의 기준을 제시한다. 통상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시에서 이뤄지는 비평은 대상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혹평은 종종 기자들이 간단한 기사로 다루는 정도이다. 미술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근력을 다지려면 훌륭한 부분을 부각시키는 평가와 더불어 더 채워 가야 할 부분 혹은 오류들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지적하는 평가가 공존했을 때 가능하다. 혹평을 적절히 역이용, 주목 받는 역사의 일부가 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라디오스타’는 역발상의 성공사례 인상주의의 경우 한 신문기자가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모네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단지 인상만을 담은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한 것으로부터 이름이 붙여졌다. 인상주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성향을 가장 잘 설명하는 언어를 혹평 속에서 취했다. 혹평이 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긍정적 요소로 기능한 점은 무척 흥미롭다.
큐비즘의 경우도 유사하다. 살롱전에 출품된 브라크의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 이었던 마티스가 “작은 입방체(cube)의 집합”이라고 언급한 후, 비평가 복셀르가 비하 용어로 큐비즘이라 이름을 붙인 데서 명칭이 비롯됐다. 1999년 등장한 장영혜중공업은 역발상적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표작 ‘삼성’은 2000년대 미술계의 화두로 떠오를 만큼 파격적인 시도였다.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는 것이다’, ‘삼성은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리라 믿는다’ 등의 문구들이 흐르는 직설적인 영상 작품들이 그것이다. 대기업을 역설적으로 풍자한 행위는 ‘돌직구’보다 더 강렬하다. 장영혜중공업은 작업의 시작부터가 혹평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받을 수 있는 여지를 오히려 작업의 재료로 삼아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자 했다. 제도권의 판타지를 깨는 그 용기는 결과적으로 제도권의 인정과 함께 영입되기에 이르렀다. 삼성의 사립미술관 로댕갤러리에서 장영혜중공업이 개인전을 개최한 일은 그야말로 기막힌 역설이자 반전이다. 어떤 분야나 위치에서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혹평을 유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때로는 비정상적 사고를 통한 역발상이 발전적인 미래를 열 수 있다. 혹평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될 소지 때문에 꺼려지는 영역이다. 그러나 혹평은 결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주목할 대상이다. 쓴 소리는 독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는 약이다. 비판에 관대해지는 용기가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올지 모른다. -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