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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큐레이터 다이어리]작품의 마지막 여정

기증을 통해 미술 가치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문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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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7호 박현준⁄ 2013.10.07 11:34:22

올 여름 원로작가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아트페어를 준비하면서 선생님과 상의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선생님은 작업을 무리하게 했는지 몸살 증세가 있었다. 인사말로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걱정스럽게 말을 했더니 덥고 습한 날씨에 에어컨,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금세 목이 걸걸해지고 몸도 무거워 진다하시며 몸 상태를 이야기 하셨다. 선생님은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도 작업실이 더울까 걱정하시며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놓으시곤 필자를 시원한 곳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송구스러운 마음에 “에어컨을 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작년보다는 많이 나아지셨다며 건강에 대한 말을 이어가셨다. 작년 미술관에서 초대전시를 하면서 무리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은 사람들 보다 회복이 빠르지 않다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올해는 100호의 대작도 그려내고 30호도 몇 점 그렸다하시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셨지만, 내년에 대작을 그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1년 이상을 길게 내다 볼 수 없어 전시스케줄도 기획전 위주로 참여하실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선생님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은 산을 그리신다. 고인이 된 이두식 교수님의 자서전 ‘고릴라 로마 위에 서다’ 에선 산을 그리는 선생님을 소개하며 그의 작품에선 공기가 느껴진다고 쓰여 있을 정도이다.

현장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좋아하는 미술애호가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작년 시립미술관전시를 통해서 많은 작품을 기증하셨다.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점은 공익을 위한 확고한 결심, 철저한 계획을 통한 추진력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배려심이다. 선생님의 작품은 미술관에 보존되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은 이와 같이 모범이 되는 사례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작년에는 다른 원로대가의 가족 중 한분이 화랑에 찾아 온 적이 있다. 화랑과의 만남은 올해 전시를 상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작가의 건강상 이유로 직접 오시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 가격을 올려 전시진행을 화랑에 제안해 왔다. 명예를 잇는 여정의 마무리는 기증 워낙 높은 작품가격 책정에 놀랐지만, 현실적인 미술시장의 사정을 모르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그 원로대가의 가족에게 선생님의 현재 건강상태를 묻고 싶었지만, 초면에 실례라는 생각에 화랑에 작품 리스트를 보내 주실 때 현재 선생님의 사진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허락하여 사진을 받게 됐다. 보내온 사진은 원로 선생님의 마르신 체구의 모습만 확인할 수 있는 편집된 상태였는데 그 사진을 보고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화랑에서는 높은 작품가격 책정이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쳐 전시를 계획을 취소해야 했지만, 필자는 작가 선생님께서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전시가 아니라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원로 선생님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동안 안타까운 사실을 확인했다.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원로대가의 발자취를 남길 목적의 미술관건립을 몇 년 동안 추진하던 중 가족과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예산이 불용처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불용처리 된 예산을 현실적으로 다시 예산 책정이 힘들다는 말도 있었다. 이 원로선생님은 올해 별세하셨다. 안타깝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 작품 기증을 통해 미술관이 건립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날에 세계적인 문화가치는 기증을 통해 더욱 더해져 가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피카소의 유족은 거대한 상속세를 대신해 작품을 기증하여 피카소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고, 올해 에스티로더 명예회장이 1조1000억 원의 가치로 환전될 수 있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졌듯이 말이다. 현재의 대가의 반열에 오른 원로 선생님들이 어려운 작업 환경 속에서도 이루어낸 값진 명예를 이어가는 여정의 마무리가 작품기증이라는 말을 어렵게 꺼내고 싶다. 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은 수집, 보존, 학술, 전시를 통해 작가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하고 후세에 높은 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족들이 급한 사정에 작품을 헐값에 팔게 되어 가치는 더욱 떨어진 일과 모든 짐을 작가와 그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사회의 무책임한 모습으로 작품들은 뿔뿔이 흩어져 재조명할 전시를 위한 작품들을 모으는 일이 힘든 선례가 우리주변엔 빈번하다. 그림을 금전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많아진다면 한국의 문화 발전은 점점 꿈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기증을 통해 미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작가의 손을 떠난 미술품이 긴 여정의 끝에 한곳에서 모여 경쟁력 있는 유산을 만들어나가는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지길 바란다.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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