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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한복 입은 마리아·갓 쓴 예수…탄생 100돌 운보의 ‘눈물 예술’

무언(無言)과 불청(不聽), 내면의 울분을 열정적 예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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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9호 왕진오⁄ 2013.10.21 14:05:13

무언(無言)과 불청(不聽)의 결함에도 활발한 창작활동과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친 것으로 잘 알려진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이 1951년 군산 피란 시절 그린 '예수의 일생' 29점이 11년 만에 공개됐다. 10월 17일부터 2014년 1월 19일까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예수와 귀먹은 양'전을 통해서다. 운보는 1930년 이당 김은호 화백(1892∼1979)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18세인 1932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널뛰기’를 시작으로 연이어 입선하고, 1937년 제16회 선전에 ‘고담’으로 특선,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했다. 김기창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과 뜨거운 예술혼으로 자기혁신을 이룩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후에 청록산수, 바보산수, 십장생, 바보화조, 문자화, 점선 시리즈, 봉걸레 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세계를 완성한 한국화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회화사에서 독창적인 화풍으로 우뚝 선 운보 김기창 탄생 100돌을 맞이해 열렸다. 6.25 전쟁 당시 군산 인근의 자그마한 농촌마을에서 조선시대 풍속에 따라 그린 30점의 성화와 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 우리 전통회화의 무한한 잠재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보고자 마련된 자리이다.

서울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예수의 생애'는 30여점에 달하는 대작으로 예수의 삶을 전통 회화 형식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예수와 성모마리아에게 한복을 입히는 등 전통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한국 회화사와 세계 기독교 미술사를 통틀어 매우 독창적이며 중요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예수의 삶을 조선시대 배경으로 그린 것으로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조선 시대의 복식을 한 등장인물들과 초가, 기와집 등 우리 전통 가옥이 유연한 세필로 묘사되어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운보, 예수의 고난을 우리 민족의 비극에 비유 운보의 '예수의 생애'는 주로 신약성서의 내용으로 주요한 부분을 요약했다. 작품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박해, 그리스도의 공생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요약된다. 모든 그림에는 한국의 풍속에 맞게 각색됐다. 이 그림들은 29점으로 그려졌으나, 3년 뒤 독일 선교사가 이 그림을 보고 "부활절 카드에 쓰고 싶다"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줄 것으로 부탁해 '부활'을 그려 30점이 완성됐다. 예수의 고난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운보는 한국적 성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백주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성화제작에 몰입해 1년 만에 30점의 작품으로 탄행한 것이다.

'귀먹은 양'은 청각장애라는 비극을 맞은 운보가 타고난 예술적 재능으로 침묵과 정적의 세계를 딛고 내면에 응축된 울분을 창조적 열정으로 표출해 승화시킨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조망한다. 장애를 이겨낸 운보의 의지와 기개는 그의 예술세계에 그대로 드러난다. 전통회화의 기법을 바탕으로 과감히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한편 이를 재해석해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펼친 운보는 근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양화단을 선도해 가며 한국화의 기수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운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전시장에는 운보의 다채로운 표현영역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통적 동양화의 채색화법을 보이는 인물중심의 풍속화, 민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표현한 바보산수와 바보화조, 청록 빛의 강렬한 채색풍경이 돋보이는 청록산수, 운필의 묘가 생생한 문자도 등 운보의 다양한 작품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또한 운보의 삶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아내 우향 박래현과 사별한 후 충청북도 청원에 ‘운보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며 사용하던 화구, 생활용품, 종교생활용품 등 100여 점에 달하는 물품들이 선보인다. 붓, 벼루 그리고 40여점에 달하는 낙관과 운보 김기창 화백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양말과 고무신에 이르기까지 화가의 예술혼과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물품들을 볼 수 있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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