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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종의 공공미술이 미래다]공공미술은 곧 집단지성의 확장

공공예술가는 믿음과 다양한 성찰로 스스로를 혁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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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5호 장수종 이도공간 연구소 MetaSpace MediaLab 연구소장⁄ 2014.02.10 14:15:39

설 명절 이후 각종 매체에서는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쏟아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부터 원유 유출, 가족 간 반목과 고부 갈등으로 인한 이혼위기까지 다양하다. 일종의 명절 증후군이기도 하지만, 국민 대다수 입장에서 보면 예견된 문제로 피할 수 없는 고충이다.  

이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내재한 구조적 원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시스템의 원리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실존적 고충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이제 새롭지 않다. 아울러 다른 소외계층인 예술가들의 문제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잉여 인간’이라 부르는 예술가들에게 명절은 남다른 갈등으로 다가온다. 이는 대부분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인을 바라보는 모순된 인식에 기인한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연과 학연이 결국 사회적 직위와 소득에 대한 무한 경쟁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예술가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미비할 수밖에 없다.

생존의 압박은 당면과제다. 미혼 예술가는 결혼의 압박에 시달리고 기혼 예술가는 이혼의 두려움에 밤잠을 뒤척인다. 연봉수준과 고소득 배우자, 아파트와 고급 차 그리고 새로운 투자처와 고액 패키지여행 등 일반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 자연스레 죽마고우들과도 멀어져 간지 오래다.

▲바바라 크루거 ‘나는 소비자로서 존재한다’.


돈도 없는데 무슨 예술이냐는 질문들과 이제 열심히 돈 벌라는 덕담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편으론 그들의 활동과 소득을 궁금해 한다.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듯 그들의 현실적 비루함과 상대적 비참함에 씁쓸해하지만 때론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예술가들의 다각적인 사고방식에 싸늘한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결국 예술가의 존재에 강한 이질감과 배척심을 표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일반 대중과 사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현대 미술은 ‘비-물질적 양식’의 콘셉추얼 아트와 사회적인 태도의 퍼블릭 아트, 그리고 사회 변화의 미디어 아트가 형식적인 통섭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위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 자체의 양식성 보다는 아이디어나 인식의 과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의 의식과 미디어의 개념 그리고 공공장소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 설치 작업 전경.


현대 미술, 특히 공공미술의 중요한 이슈는 대중매체와 공공장소를 활용할 전략과 급변하는 현실의 중재 그리고 혼재하는 다원적인 기호체계를 해석해 고찰할 수 있는 장치를 상설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계몽적 혹은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이 요구된다.

비평적 텍스트를 통해서 공공미술의 새로운 기호체계를 실험한 바바라 크루거는 “나는 소비자로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고 말했다. 미디어의 광고 기법을 적극 활용한 작업을 통해 메시지를 동반하는 언어를 활용했다. 그는 대중 매체를 이용해 미술의 새로운 확장을 시도했다.

제니 홀저는 다양한 일상의 매체를 통해 사회의 현실과 도시의 구조 사이에서 대중들이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며, 일상의 장소를 환기시켜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지시키고 있다. 그는 맨해튼 빌보드 전광판을 사용해 언어를 기초로 한 미술이 공공장소에서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 작업 ‘진부한 문구(Truisms)’을 완성했다. 이를 기점으로 언어의 힘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관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사회의 왜곡된 진실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제니 홀저 작품 설치 전경.


공공미술에서 기억할 건 작품에 담긴 메시지

사실 늘 똑같은 세상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면 세상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공공 미술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일 것이다.

공공미술에 참여하는 예술가는 일상 공간을 불특정하고 산만한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위해 고찰할 수 있는 장소로 매개시키는 일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은 공공적인 장소에서 예술가들의 의식과 함께 집단지성 활동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도, 미래가 바뀌지 않지만 예술가는 자신이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세상에는 뭔가 다른 것들이 보이는 법이다. 따라서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조력자나 질투심 많은 친구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을 뒷받침할 다양한 경험과 성숙한 성찰일 것이다.

- 장수종 이도공간 연구소 MetaSpace MediaLab 연구소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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