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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큐레이터 다이어리]내 생애의 미술

평생 붓과 함께 생활, 이젠 예술정보 알려주며 영혼을 살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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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5호 김연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2014.04.21 13:21:09

어느 날 문득 내 생애의 최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마도 ‘자연농원’에 스케치북을 항상 가지고 다녔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물론이거니와 할머니댁 유치원 등 어디든 어린 시절의 필자는 언제나 스케치북과 함께였다. 그 시절부터 그림과의 숙명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붓을 들고 다녔다.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주변 지인들은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자라오면서 그림은 탈출구 같은 또 다른 세계로의 통로였다. 하교 후, 조그마한 화실에 들어가 혼자 배철수의 라디오를 켜고 흰 종이 위에 연필로 사각사각하는 소리, 스케치가 끝나면 물을 물통에 담아와 무지개빛깔의 수채물감을 흐트러뜨리는 쾌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리고 밤공기 맡으며 집으로 걸어오는 길…. 그 길에 행복을 느껴왔던 학생이었다.

이러한 1차적 행위의 단순한 매력에 이끌려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처음으로 종이가 아닌 천에, 물이 아닌 기름을 물감과 섞어 치덕치덕 바르는 기법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머리가 띵~ 해지는 기름 냄새와 번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치덕치덕 물감의 쌓아 올리기는 수채화를 사랑하였던 여학생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모든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 중 물과 종이의 느낌을 좋아했기에 그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화였다. 기름 냄새 가득한 서양화 실기 실에서 벗어나 한국화 실기실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고 정결한 먹냄새가 나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그들은 내가 찾던 물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앞뒤 생각 않고 한국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태어나 먹이라는 것을 다루어 본적도, 동양화 붓을 다루어 본적도 없었지만 그저 종이와 물에 대한 갈증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동양화라 하면 단원 김홍도의 씨름, 신윤복의 미인도, 정선의 진경산수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전부였다.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윤형재 작가 전시전경.


그러나 한국화 실기실의 친구들은 내가 알고 있던 사군자의 그림보다는 현대작품의 개방적, 모던함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색채와 대상, 주제를 그리고 있었다. 얇디얇은 화선지의 종이 위에 검은색 먹으로만 그림 그리는 것이 다인 줄 알았던, 내 고요한 무지함에 커다란 파장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접하였던 대학생의 나와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한국화의 다양함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묵화를 대부분 떠올리고 있겠지만, 수묵화 말고도 채색화라는 한국화의 또 다른 기법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물감의 안료를 장지라는 두꺼운 종이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이 기법은 수묵화보다 색채가 화려하며 세밀 묘사가 조금 더 용이하고 현대미술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시각에 조금 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발전 되어온 기법이다. 조금 더 쉽게 이해를 돕자면, 옛날 선조의 인물화들은 대부분 채색화라고 보면 된다.


한국화 실기실의 정결한 먹냄새에 취해

하지만 처음 채색화를 접한 관람객들은 이것이 동양화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방송매체에 자주 등장해 낯익은 육심원 작가의 그림, 소녀시대의 무대의상을 콜라보레이션 했던 김지희 작가의 그림 모두 채색화기법임과 동시에 현대적으로 발전한 동양화 중 하나의 장르이다.

점점 대중들의 뇌리 속에 잊혀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인 한국화의 색다른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적어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탈장르 현상이 도드라지면서 이러한 서양화 한국화의 기초적 분별기준이 모호하게 되어가는 현실이다.

많은 과정과 경험 속에 현재는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내게,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미술품을 전시 하냐고, 한국화? 서양화? 조각? 사진? ….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선뜻 대답하기 애매해진다.

▲한양여대 실용미술학과 실기실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물론 특정 장르만을 다루는 공간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점차 예술가들도 개개인의 사상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여 서로의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현상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분석하고 공부하여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하여야 하는 입장에선 일반인들이 흔히 인지하고 있는 장르를 흑백논리적인 구조로 확정 지어 단언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이 보인다고 하지 않은가? 봄 날씨 덕인지 갤러리며 미술관에 관람객들의 출입이 잦아지고 있다.

아름다운 작품들을 어떻게 감상하는지 묻는 관람객들에게 소소한 재료의 기법 및 정보,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 등 기술적인 정보를 알려주며 머리와 마음 모두 살찌울 수 있는 예술품으로 가득 채워 돌아가는 발걸음이 되길 바래본다.

- 김연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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