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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정상화 화백]독창적으로 개척한 한국 단색화 절경

40여 년 예술 세계 재조명, 갤러리 현대에서 7월 30일까지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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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5호 안창현 기자⁄ 2014.07.03 08:48:54

▲정상화 화백. 사진 = 갤러리현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그림에는 면과 선이 있고, 색이 있고, 또 공간이 있다. 이 요소들은 그림 밖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그림 안에 넣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작업하는 과정에서 선과 색, 공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상화 화백은 결과로서의 작품 이전에 과정 자체가 작품을 규정짓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내리고, 작품은 ‘되풀이되는 내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결과물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 조금 전과 다름없는 지금의 시간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 화백의 작품은 이렇게 축적된 시간을 담는다.

화면을 가득 메운 네모꼴들이 모두 제각각의 크기와 부피를 가지듯 정 화백의 작품은 무한히 흐르는 시간 속의 미세한 차이들을 쌓아 고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무제 73-A-15’, 캔버스에 아크릴, 162.2×130.3cm, 1973. 제공 = 갤러리현대


“같은 흰색 화면 안에도 조금씩 다른 색들이 섞인다. 그럴 때 비로소 화면에 움직임이 생기고 깊이를 얻게 된다. 화면의 구석구석에 조금씩 서로 다른 요철이 있고, 이를 통해 작품 속에서 공간이 생기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화면은 내게 그냥 벽이다.”

정 화백은 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알아보는데 반드시 언급해야 할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미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최근까지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기 작품 경향은 비조형주의를 일컫는 ‘앵포르멜’로 요약된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이 정 화백 또한 전후 한국사회의 사회적, 정신적 분위기를 앵포르멜 형식으로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실험성과 모험정신이 강한 자신에게 앵포르멜은 적절한 미술 형태였다고 회상했다. 정 화백의 앵포르멜 작품들은 불규칙적이었으며 자유로운 실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초기의 작품 경향은 이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향한 고민과 모색의 시기를 거치게 됐다.

“내가 젊었을 때는 다들 어려웠을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의 200호짜리 캔버스를 손수 만들어서 써야 했다. 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얻기 힘들었다. 그때 미국부대에서 나온 ‘라이프’ 잡지의 화려한 사진들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그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그는 1967년부터 1년 동안 프랑스에서 수학한 이후 1969년에서 76년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여러 작가들의 예술을 접하고, 다시 1979년에서 92년까지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찾아갔다.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작업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정 화백의 작품은 격자 형식의 구조를 가지고 규칙화되었고, 작품 특유의 반복성은 최근까지도 일관적으로 보여진다.

▲갤러리현대 신관 전시 전경. 사진 = 안창현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 통해 새로운 공간 창조

‘뜯어내기’와 ‘메우기’ 창작은 무수한 반복을 통한 시간과의 투쟁이다. 화백은 캔버스 위에 약 5mm 두께의 고령토를 초벌칠하고, 그것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리는 제1단계의 작업만으로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보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제2단계는 마른 캔버스 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로 접는 것이다. 그런 후 캔버스 위의 고령토를 원하는 만큼 들어내는 과정 역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정 화백은 “수직, 수평으로, 때로는 그물처럼 캔버스 위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무수한 네모꼴에 하나씩 물감을 얹고, 떼어내고 다시 덮어나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간다”고 말했다.

눈을 떠 잠드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인다. 그의 작품에는 치열한 고뇌의 흔적과 노동의 시간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현대 신관과 두가헌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화 화백의 개인전은 지난 40여 년의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70~8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한자리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시기별로 선별됐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한국 단색화가 활발하게 재평가 받고 있는 와중에 한국 단색화의 한 절경을 이루는 정 화백의 작품 세계와 그 흐름을 살펴보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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