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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트라우마로부터의 자유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미술에서 정서의 특약처방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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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7호 신민 진화랑 실장⁄ 2014.09.25 08:46:5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몸이 아플 때 약을 먹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자연치유가 되도록 참고 기다리는 쪽이 나을까?”라는 질문에 한 의사 친구의 대답은 몸이 아픔을 기억하는 시간이 긴 것은 좋지 않다는 것. 물론 자연 치유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아픔을 빨리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의견이었다. 감기에 걸려도 빨리 낳으면 언제 아팠냐는 듯 쉽게 잊어버리지만 너무 오랫동안 앓았던 경우는 그때 정말 지독하게 고생했다는 기억으로 남아버린다.

정신적 아픔 역시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보통 트라우마는 최대한 덮어버리거나 피하는 식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내부적으로 얼마나 곪아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소독도 안하고 연고도 바르는 노력 없이 새살이 언젠가 돋을 것이라 기대하는 꼴이다. 혹을 달고 있다가 그게 암으로 퍼질 지도 모른 채로.

암도 초기에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해결이 되지만 말기까지 진행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빨리 검사를 받을수록 즉, 아픔을 인정하고 바라본다면 빠른 처방과 진단이 자신을 살린다. 

정신병 중에서도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벌레 공포증 환자라면 하나는 벌레를 무서워해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벌레를 직접 만져보게 함으로써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도록 두려움을 깨는 것이다.

▲제프쿤스 뉴욕 회고전 ‘MADE IN HEAVEN’전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SBS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신 의학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과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점차 극복되어가는 모습을 교차시킨다.

극 중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열과 성을 다하지만 막상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에는 매우 서툴다. 모두 극단적 방어기재를 쓰는 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타인과의 충돌이 사랑 때문에 두려운 것보다 편하다고 느낀다.

공포증에 있어 가장 좋은 치료는 아팠던 기억과 관련된 상황에서 직접 행복을 느끼는 경험을 갖는 것이다. 아픔을 대체할 정도의 기쁨이 특효다. 따라서 지해수의 주변인들은 그녀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도록 장재열과의 연애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미술이야 말로 인간의 정서에 항상 특약처방이다. 다시 보게 하는 것,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것으로서 편협했던 감성을 유연하게 하므로. 미술은 세상을 미화시키거나 반대로 수면아래의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아름다운 장면이 우리를 다독여주는 것이라면, 일면을 확대하거나 혐오스럽고 추한 단상들을 외면하려던 요소를 마주하게 하는 충격요법이다.  


행복을 주는 쿠사마 야요이의 미술 세계

대표적인 예로, 쿠사마 야요이는 환각이 보이는 정신강박증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그로써 탄생한 환상적인 세계는 수많은 이들을 빠져들게 함으로써 행복감을 주었다.

특히, 못생겨서 친숙한 호박은 쿠사마를 통해 아름답고 소유하고 싶은 호박으로 거듭나면서 호박의 트라우마를 기막히게 벗어나게 했다. 이 과정은 어려운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사례로서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 희망을 전하게 됐다.

제프쿤스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을 반짝이고 매끄럽게, 화려하고 거대하게 재탄생 시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의 조형물 앞에 서면 판타지 영화 속 놀이터가 연상된다. 유아적 욕구, 값싼 대중 산업의 경박함을 즐기고 싶은 욕구, 예쁜 것에 쉽게 눈길이 가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놀이 같다.

이처럼 원색적이며 밝고, 만화 캐릭터 같이 이해가 쉬운 소재들을 표현한 소위 팝아트 장르의 작품들은 즉각적이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준다.

한편, 반미학적인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은 현실에 만연한 문제들을 직면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탐욕을 대변하는 것들 앞에 우리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아트사이드 갤러리 ‘그들에게 있어 자유란 죽음뿐이다’ (Crematorium-Prophecy of Das Kapital)전 당시 한효석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프랑스 작가 생트 오를랑은 성형수술 장면을 공개하는 ‘수술 퍼포먼스’ 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녀는 다이애나의 눈, 프시케의 코, 비너스의 턱, 유로파의 입술, 모나리자의 이마 등 남성 미술가의 작품에 묘사된 남성 중심적, 서양의 고전적 미의 기준을 패러디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성형하고 그 과정을 15개 지역으로 생중계 했다.

특정한 기준에 맞춰 자신의 외관을 변형시키는 행태에 반대하는 견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모두 뜨끔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끼겠지만 그 동안 무심코 쫓았던 것들에 대해 재고해보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중견작가 한효석 작품의 엽기성도 만만치 않다. 사람의 얼굴에 돼지고기 덩어리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작품 ‘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는 오래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혐오스럽다.

이 작업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흑인, 백인 등 모든 사람의 얼굴 껍질을 5mm 만 벗겨 내면 똑 같은 고깃덩이에 불과하므로 인종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무의미 하다는 메시지를 표현한다. 잘못된 사회구조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대면하도록 고안한 것이다.

개인적·사회적 트라우마 모두 시간만이 약은 아니다.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때마다 아파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고 그를 대체할 즐거운 사건이 생겼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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