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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관람객들에게 ‘이렇게 봐라’ 가르치지 않는 전시

아트선재센터, 김성환 개인전 ‘늘 거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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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7호 김금영 기자⁄ 2014.09.25 08:47:17

▲‘늘 거울 생활’ 아트선재센터 2층 설치전경, 2014, Courtesy of Sung Hwan Kim and Art Sonje Center, Photograph by Seoul Photos Studio © Sung Hwan Kim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전시장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검은 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깊은 구멍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되는 것처럼 검은 벽을 통과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다.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늘 거울 생활’ 전시장의 첫 풍경이다. 좁고 기다란 통로를 지나니 기대했던 것처럼 확 트인 공간이 새롭게 눈 앞에 펼쳐졌다.

‘늘 거울 생활’전은 뉴욕을 기반으로 ‘하우스 데어 쿤스트’, ‘퀸즈 뮤지엄’, ‘비트 드 비드 센터’ 등 해외 미술관, 갤러리에서 활동해온 김성환 작가가 국내에서 가지는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이선민 아트선재센터 홍보팀장은 “김성환 작가는 해외에서 활동을 주로 했는데, 국내에서는 그룹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대규모 개인전을 가지는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라며 “사운드와 영상, 미디어, 퍼포먼스까지 아우르는 장르를 흔히들 다원예술이라 칭하는데,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이 장르를 작업하는 작가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림, 조각을 보는 전시에 익숙했다면 이 전시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비디오,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아다다’, 16mm/비디오, 20분, 2002, Courtesy of Artist and Wilkinson Gallery, © Sung Hwan Kim


전체적으로 이 전시는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등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평적·수직적 권력 관계에서부터 폭넓게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불거지는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전시 제목인 ‘늘 거울 생활’ 또한 초등학교에서 음악, 미술, 체육 통합 교과서인 ‘즐거운 생활’을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되는데, 교육을 통해 지식뿐 아니라 타인의 즐거운 감정과 생활방식, 기호까지 가르치려는 구조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고 볼 수 있다.

▲‘마나하타스 댄스’, 비디오, 16분, 2009, Courtesy of Artist and Wilkinson Gallery © Sung Hwan Kim



감정과 생활방식까지 가르치려는 구조적 문제에 질문 던져

이 주제 의식들은 작품 속에 투영돼 관람객들을 만난다. 먼저 입구 통로를 지나면 나타나는 2층 전시장에는 영상, 사운드, 조명,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작업이 배치돼 있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상 작업 ‘아다다’와 ‘마나하타스 댄스’가 있다. ‘아다다’는 두 명의 아시아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인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을 맡기고 벌어지는 현상을 담는다. 두 사람 모두 계속해서 말을 더듬는데,  마치 수직적 구조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거지는 소통의 불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나하타스 댄스’는 뉴욕의 옛이름인 ‘마나하타스’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1911년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 착안해 만든 작업이다. 왜 이 화재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문제의 근원으로 들어가서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수박의 아들들’, 퍼포먼스, 2014, Courtesy of Sung Hwan Kim and Art Sonje Center, Photograph by Seoul Photos Studio © Sung Hwan Kim


3층 전시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 왕’의 이야기를 한국의 현대사적 맥락으로 옮긴 영상 작품 ‘템퍼 클레이’가 상영되고 있다. 작가는 ‘리어 왕’을 재산 분배를 둘러싼 훈육의 문제로 독해하고 접근했다. ‘리어 왕’ 속  16세기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형성돼 있던 권력구조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고 보고,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24분 동안 영상이 자막과 함께 펼쳐진다.

2층과 3층 모두 전시를 보는 순서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이는 작가가 권력 관계에서 우위의 입장에 서서 관람객들에게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전시는 이렇게 봐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았던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수박의 아들들’, 퍼포먼스, 2014, Courtesy of Sung Hwan Kim and Art Sonje Center, Photograph by Seoul Photos Studio © Sung Hwan Kim


이선민 팀장은 “작가가 큐레이터들에게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해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 말고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된다’고 말해주라고 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라”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고, 흥미롭게 느낄 수도 있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오답과 정답은 없다. 실제로 관람객들을 보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시를 즐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전시장을 방문했던 날도 몇몇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었다. 학생, 외국인, 젊은 커플까지 다양했는데, 전시를 관람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영상의 경우 편히 앉아볼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영상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보는 관객도 있었고, 전시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여러 번 작품을 살펴보는 관객들도 있었다. 전시는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그런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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