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기획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시장 2층 전경. 가운데 시갈리트 란다우 작가의 ‘남자의 훌라’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개그콘서트에서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코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코너에서 남성들은 화장실 간 여자친구의 가방을 들고 기다리거나 여성과의 말싸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등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로 칭했다. 그리고 여성에게 무시받는 남성 인권을 지키기 위해 들고일어나자는 콘셉트로 웃음을 자아냈다.
가부장적 사회의 전형으로 인식돼온 한국에서 여성에 의한 남성 역차별의 위험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에 흥미를 가진 이혜원 교수는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기획전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고 있다.
“페미니즘을 다루는 전시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남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다루는 전시는 많지 않다. 남성에 관한 담론을 다루는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주의적인 중동 지역 작가들도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총 25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대표적으로 몇 작품들을 보자. 시갈리트 란다우의 ‘남자의 훌라’는 남자 3명이 반경 3m짜리 훌라후프를 함께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반복 재생하는 영상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후프를 계속 돌리기 위해 서로에게 의존하며, 후프가 도는 속도에 갇혀 있는 남자들은 개인으로 존재하기 힘든 중동 남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시장 3층 전경. 로미 아키튜브 작가의 ‘춤’이 설치돼 있다. 남성성이 잡을 수 없는 신기루는 아닌지 묻는 작품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김지현의 ‘총알맨’ 영상에는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은색 투구를 쓴 20대 남자 7명이 지하 공간에서 하나뿐인 출구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담겼다. 투구는 남성의 성기와 총알을 혼성한 형태로 만들어져있는데, 그 투구 때문에 방향감각을 상실한 이들의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느끼는 불안과 혼돈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 슬프다고 느끼면서도 표현 못하고, ‘페니스라는 눈가리개’에 갇혀 빙빙 돌기만
이동용의 ‘아버지’는 친구, 친척, 지인, 동료 작가 등을 통해 수집한 수백 장의 가족사진으로 하나의 거대한 경관을 구성하는 설치작업이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각 가정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가정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기러기 아빠’를 연상케 한다. 작품 속 가족들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을 준다.
그리고 굴순 카라무스타파의 ‘우는 남자들’은 한때 터키의 유명배우였던 세 명의 60~70대 남성이 상실을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마초적인 남성들의 이면을 드러내는 방식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이처럼 작품엔 작가 25명 개개인이 지닌 남성에 관한 담론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따라서 전시장 2층과 3층에 설치된 작품을 모두 둘러본 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혼돈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각인돼 있는 강인하고 압도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러워하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소외돼 외로움을 느끼는 남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때 터키의 유명배우였던 세 명의 60~70대 남성이 상실을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우는 남자들’. 굴순 카라무스타파의 작품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 교수는 “10년 전에 이 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여성인권이 신장돼야 하는데 무슨 남성성을 주제로 다루냐’ ‘남성들을 비판하려고 하는 거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성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었고, 현재는 이런 의견들을 거의 듣지 못한다.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하는 남자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점에서 작가들에게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던져주고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업을 살펴봤다. 남성 작가들이 의외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걸 어려워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점 또한 흥미로웠다”며 “어떤 문제를 풀거나 해답을 요구하는 전시가 아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각자가 남성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2015년 1월 25일까지 열린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