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장정동]추상으로 풀어내는 선미(禪美)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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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글·신항섭 미술평론가) 수행자의 의식세계는 협곡과 같은지 모른다. 오랜 세월 바위를 파고드는 깊은 물살에 의해서건 또는 지각이 갈라지는 틈으로 이뤄졌든 간에 아찔한 깊이와 높이를 지닌 협곡의 형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협곡에 들어서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된다. 보이는 것은 앞뒤 물줄기와 양옆 바위절벽 그리고 하늘뿐이다. 시야가 좁아지면 자연히 의식과 감정이 가라앉게 된다. 보는 것으로부터 사고하는 인간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보는 것이 적어지면 자연히 의식은 침잠하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무언가에 대해 의문을 일으키게 되면 오직 거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움의 미학, 53x45.5cm, Oil on canvas.
비공 장정동 스님의 작업은 수행자로서의 이미지에 합당한 주제 및 내용을 지니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추상적인 이미지로서의 만다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불성이고 보면, 그로부터 연원하는 그림이나 사상 또는 철학은 거기에 근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이란 결과적으로 보고 배우고 느끼며 생각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이 그림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비움의 미학, 116.7x91cm, Oil on canvas.
그가 보는 세상은 불교적인 것, 그리고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세상의 모든 현실적인 풍경이다. 그의 종교적인 사유 및 일상적인 사고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결과적으로 회화적인 조형세계나 그를 이끌어가는 의식세계는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의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불가에서 생활해온 수행자로서의 습속이나 사유체계가 어떠하리란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수묵화를 접한 이래 산수화와 문인화를 거쳐 유채화로 변화하게 된 것은 일체무상(一切無常), 즉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불교적인 사상에 반응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무엇을 손에 드느냐의 문제일 뿐 수묵화나 채색화 또는 유채화를 구분하는 것은 수행자인 그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이런 전제는 그의 유채 작업이 어떻게 만다라로 변환하는가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비움의 미학, 41x31.8cm, Oil on canvas.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불교 수행자와 유채화는 어딘가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채 작업을 보면 그런 전제가 어색한 편견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추상적인 이미지로서의 만다라 세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추상적인 이미지 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전시회에서는 순색으로서의 원색적인 색채 이미지를 자유롭게 배열해 구성하는 방식의 만다라 세계를 표현했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는 의식세계에 연원하는 만다라의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전 작업은 유채색 중심이었지만 최근 작업은 무채색 중심으로 색채의 중심축이 이동했다.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의식세계를 투영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중략…)
▲비움의 미학, 41x31.8cm, Oil on canvas.
형상성을 버리고 추상적인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은 모든 생명체가 궁극적으로는 흙으로 귀일하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무로 되돌려진다는 공(空)의 세계를 갈파하려는 데 있다. 채운 것을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그 비움의 축적이 다름 아닌 의식 및 감정의 찌꺼기인 회화 이미지로 나타나게 된다는 논리다.
이와 같은 조형의 원리에 따라 전개되는 최근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조형적인 특징은 무채색이 중심축이다. 이전 작업이 물감 자체의 순색을 통해 만다라의 세계를 조형화하려 했다면 최근 작업은 검정색, 흰색, 회색 톤으로 이어지는 무채색 계열로의 변화가 현저하다. 색채 이미지가 무채색 계열로 변함으로써 시각적인 즐거움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움의 미학, 45.5x38cm, Oil on canvas.
하지만 시각적인 즐거움이 감소하는 대신 순연한 의식의 흐름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무채색으로의 변화는 보이는 사실, 즉 현상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의식의 심층으로 침윤하는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마디로 무채색은 사유의 공간으로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중략…)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 붓과 나이프 그리고 넓적한 도구를 이용한다. 칠하고, 긁고, 덮고, 밀어내고, 덧붙이고, 짓이기고, 밀쳐내는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동원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신체적인 힘과 그 힘을 촉발하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형성된다.
▲비움의 미학, 53x45.5cm, Oil on canvas.
특정 이미지나 문양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작업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이나 미적인 흥취에 이끌린다. 미적인 흥취가 길어지면 일정한 형태의 표현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 특정의 문양이 하나의 패턴으로 화면을 장악한다.(…중략…)
그의 작업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구하려 드는 것은 부질없다. 단지 수행자의 의식세계가 일으키는 감정세계를 물감의 흔적을 통해 엿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감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언어에서 조금이라도 선미(禪美)의 세계, 아니면 그 자취라도 감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정리 = 왕진오 기자)
신항섭 미술평론가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