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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사진가 민병헌]아날로그로 빚어낸 회색조 단상

미발표 ‘잡초’ 공개한 ‘모놀로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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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8호 왕진오 기자⁄ 2015.04.27 11:56:37

▲민병헌 작가. 사진 = 갤러리 플래닛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독특한 촉각성을 자아내는 회색조의 화면에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로 차별화된 그만의 사진을 보여줬던 사진가 민병헌(60)이 미공개 ‘잡초(Weed)’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모놀로그(Monologue)’전을 4월 18일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갤러리 플래닛에서 공개한다.

민 작가는 1987년 평범한 시골 길의 흙길, 땅바닥을 스트레이트(straight)하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잡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꽃피운다.

▲민병헌, Weed uq07, 젤라틴 실퍼 프린트, 120 x 103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섬’ ‘잡초’ ‘깊은 안개’ 그리고 ‘숲’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자연의 소재들을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사진이다. 그의 작품에서 흑백의 계조는 평범과 비범, 일반과 개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표현 요소다.

민 작가는 아날로그 방식(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만을 일관되게 작업하는 사진가다. 독특한 촉각성을 자아내는 회색조의 화면에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로 차별화된 그만의 사진을 선보여 왔다.

▲민병헌, Weed uq01, 젤라틴 실퍼 프린트, 120 x 103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잡초’ 시리즈는 199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새벽 이른 시간 서울 근교의 농가를 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비닐하우스 틈새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재료나 기법의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다.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위로 아래로 옆으로 제 힘 닿는 대로 자라고 있는 풀잎들이 그려내는 선 하나 하나에서, 민병헌은 문득 자신의 온 촉각을 일깨우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죽은 풀들에 투사돼”

그에 눈에 들어온 풍광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서, 원시적이면서도 무척 감각적이었고, 오묘한 아름다움이었다.

그 시절의 ‘잡초(Weed)’ 연작에 대해 작가는 “하루 종일 카메라와 함께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다닌 시절이었다. 현실적 곤란과 불확실한 미래, 내 재능에 대한 불안감이 살아 있는 꽃이 아닌 죽은 풀들에 투사됐다”고 말했다.

▲민병헌, Weed uq04, 젤라틴 실퍼 프린트, 120 x 103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이후 몇 해 동안 작가는 자연 그대로의 풀들을 직관의 심미안으로 낚기에 골몰해 흑백의 프린트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것이 오늘날 민병헌의 스타일을 특징짓는 출발점이 됐다.

민병헌 작품 세계의 전반을 아우르는 특징은 그 대상이 자연풍경이든 인체이든 간에 미묘한 회색빛의 변주로써 풍부한 정서를 담으며, 적절한 가림의 미학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첫 연작인 잡초 시리즈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이 시리즈에서 비닐은 작가가 인위적인 기법을 가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필터의 역할을 하며 대상을 가리기도 하고 강약을 더해준다.

▲민병헌, Weed uq03, 젤라틴 실퍼 프린트, 120 x 103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비닐에 갇힌 공기는 온도 차이로 인해 습기를 머금기도 하고, 물방울을 맺기도 하며, 하나의 독특한 필터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자연 그대로에서라면 주변의 식물들과 어우러져 한눈에 들어왔을 풀들이, 비닐 뒤에서는 제한된 공간에서 희소한 생존 가능성으로 홀로 존재하며 극대화된 거리감을 갖게 된다. 때로는 비닐 자체의 꿀렁거리는 주름이나 비닐에 붙어있는 먼지 등이 풍부한 회화적인 표정을 더해주기도 한다.

민병헌은 자신에게 사진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인지도를 가져다 준 잡초 시리즈를 일컬어 자신의 “30대 자화상 같다”고 표현했다.

“은염의 농도 조절과정이 사진마다 생생”

‘안개(Deep Fog)’ ‘하늘(Sky)’ ‘스노랜드(Snow Land)’ ‘물(Waterfall)’ ‘몸(Body)’ 등 많은 연작들이 있지만, 자신이 젊은 시절 살아 숨쉬는 감각으로, 때 묻지 않은 날것의 감성으로 몇 년간 몰입했던 최초의 연작이기 때문이다.

▲민병헌, Weed uq02, 젤라틴 실퍼 프린트, 103 x 120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자라는 자유분방함과 무목적성을 가진 잡초처럼, 민병헌도 그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그저 보고 느낀 것을 있는 어떻게 하면 인화지 위에 가감 없이 전달할까에 골몰했을 뿐이다. 이런 순수한 열정과 몰입 덕분에 민병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30년간 작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의 사진에 대해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은 “우리 시대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 변주시키는 역할을 한다.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민병헌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 만큼 강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다”라고 말했다.

▲민병헌, Weed uq05, 젤라틴 실퍼 프린트, 103 x 120cm, 1996, 프린트 제작 2014년.

또한 “사진이 흑백에서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회색조로 전환된 세상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에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다”고 평은 이어진다.

같은 사람이라도 생애의 시기마다 작품은 조금씩 다른 감성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될 잡초 시리즈의 미발표작은 민병헌이 가장 민첩한 전감각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며 사진으로 담아내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의 감성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이제 성숙기를 거쳐 완성기에 접어든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출발점이 될 전시는 5월 1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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