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人 - 여성 미술 ③]여체에 빛의 옷을 입히다
크레이지호스 파리 인 서울 “원초적 美를 예술로”
▲‘크레이지호스 파리’에선 발레 등을 전공한 전문 무용수들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사진 =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크레이지호스 파리’는 ‘리도’, ‘물랑루즈’와 함께 파리 3대 아트누드 퍼포먼스로 불린다. 1951년 5월 19일 파리 조르주 5번가에서 최초로 만들어졌고, 65년 만에 워커힐 시어터에 내한한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순수한 피부 위에 다양한 빛과 영상을 입히고, 거기에 오감을 자극하는 안무를 더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마치 움직이는 캔버스처럼 보이는 ‘네이키드 쿠튀르(Naked Couture: 벗은 패션)’다.
이 공연은 1951년 당대의 유행이었던 해학적 여성 풍자극으로 시작됐지만, 팝아트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쇼를 넘어선 공연예술을 지향하며 레퍼토리를 확장해왔다. 이후 현대성과 스타일, 문화를 반영하는 예술 작품으로서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왔다.
세계적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알려져 있다.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자신의 뮤직비디오 ‘허트(Hurt)’를 크레이지호스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비욘세 또한 ‘파티션(Partition)’ 등에서 크레이지호스 무용수들과 함께 했다. 2012년에는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이 객원 연출가로 참여했다. 이밖에 데미 무어, 우디 앨런 등도 크레이지호스에서 예술적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
▲1951년 파리에서 탄생한 ‘크레이지호스 파리’가 65년 만에 내한한다. 누드 위에 빛과 영상을 입힌 퍼포먼스로 주목받는다. 사진 =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65주년 기념 투어로 진행되는 이번 내한 공연은 라스베이거스 태양의 서커스 쇼 ‘아이리스’의 연출가인 안무가 필립 드 쿠플레가 ‘크레이지호스 파리’의 베스트 컬렉션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무대 위에는 늘씬하고 쭉 뻗은 8등신 미녀 무용수들이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성기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등장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크레이지호스 레퍼토리 중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첫 장면 ‘갓 세이브 아워 베어스킨(God Save Our Bareskin)’이다. 군기가 잔뜩 들어간 무용수들이 경례를 하며 등장하는데 이들의 나체를 캔버스 삼아 화려한 빛과 영상이 쏘아진다.
‘르송 데로티즘(Lecon d’Erotisme: 에로티즘 강의)’도 눈길을 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1930년대 세계적 섹스 심벌이었던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입술을 본떠 만든 ‘메이 웨스트 입술 소파’를 모티브로 탄생한 장면으로 새빨간 입술 소파가 등장한다. 이 입술 소파 위에 무용수가 몸을 뉘이고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그나마 몸을 가리던 가터벨트와 란제리들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본래의 육체를 드러낸다. 공연 관계자는 “엄격하고 정확한 신체 사이즈를 기준으로 선발된 발레리나 출신 무용수들을 통해 여성을 찬미하는 공연”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 佛 감독·무용수 “여체美에 女관객이 더 환호”
‘크레이지호스 파리 인 서울’을 기획한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이병수 대표와 ‘크레이지호스 파리’ 회장 겸 총괄 감독인 필립 롬므 그리고 직접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용수 애니와 글로리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크레이지호스 파리’를 “누드 아트”라 표현했다.
이병수 대표(이하 이) “처음 이 작품을 프랑스에서 봤을 때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고 느꼈다. 쇼라기보다는 회화 작품 같았다. 아름다운 여성의 몸에 빛과 영상을 입혀 캔버스처럼 표현했다. 화려한 뮤지컬 무대처럼 스케일이 크진 않지만 작은 살롱 같은 공간에 살아 있는 캔버스를 설치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살아 있는 예술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았다.”
- 한국 레퍼토리만의 특징이 있는가?
필립 롬므 회장 “파리에서도 여전히 ‘크레이지호스 파리’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독특하고 특별한 그림들을 선정해 왔다. 서울에서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더 부각했고, 대중적으로 즐길만한 안무 요소들을 많이 가져왔다. 특히 여성 댄서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무대들을 골라 왔다.”
이 “실제 파리의 무대도 크지 않다. 그 무대를 고스란히 서울에 옮겨 왔다. 파리의 객석은 360석인데, 한국에서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 587석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파리 작품보다 더 역동적인 움직임에 음악도 템포가 더 빠른 것으로 준비했다.”
▲(왼쪽부터) 이병수 대표, 글로리아, 애니, 필립 롬므 회장. 사진 = 더블유앤펀엔터테인먼트
- 퍼포먼스의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애니 “대표 안무가가 있기는 하지만 댄서들이 창의적인 안무에 함께 참여한다. 대표 테마를 안무가가 제안해 기본적인 안무를 구상하면 댄서들이 뭔가 더 제안하고 살을 붙이면서 안무가 완성된다.”
글로리아 “발레, 댄스, 클래식을 전공하고 3개월 이상의 연수를 거친 댄서들이 ‘크레이지호스 파리’ 무대에 설 수 있다. 댄서 구성원들은 프랑스인을 포함해 국제적이다. 나는 이탈리아인이다. 각 댄서들만의 독특한 몸짓과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고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애니 “이 퍼포먼스는 여성의 아름다운 성을 강조한다. 즉 누드의 아트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안무는 남성 또는 여성의 성적인 환상을 적절하게 간질여준다. 특히 여성의 몸이 어떻게 형상화돼 있는지 보여주며, 여성 성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승시켜서 표현한다. 전 세계 투어를 했을 때 최고의 관객은 남성 아닌 여성들이었다. 퍼포먼스를 보자고 제안하는 것도, 큰 환호를 보내는 것도 대부분 여성 쪽이었다.”
글로리아 “한 번도 무대 위에서 발가벗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 몸에는 다양한 빛과 영상으로 새 옷이 입혀진다. 그래서 ‘벗은 패션’이다.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예술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떻게 공연을 느끼느냐는 관객의 자유다. 해외 투어가 싱가포르, 마카오 등에서 짧게 열린 적이 있는데 보수적인 아시아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크레이지호스 파리’는 원초적인 예술이다. 원초적인 신체의 아름다움에 빛나는 테크놀로지를 입힌 결정체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벌거벗은 자세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일 자유와 여력이 있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