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오랜 미술친구들의 ‘착한’ 페어 나들이
작가 12명, ‘SB펀드’ 도우려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참가
▲장현숙, ‘The flower hears the words’, 은·동·에나멜, 12 X 14cm, 201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스타 작가로 통하는 전업 작가와,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 화가들이 아트페어에 작품을 내놓으며 ‘좋은 일’에 의기투합을 했다.
권희연, 권치규, 김경민, 김성복, 김연규, 왕열, 이강화, 이철수, 장현숙, 정병헌, 차동하, 최문희 12명 작가들은 아트스페이스H(대표 권도균)가 5월 20∼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층에서 진행하는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의 부스에 작품들을 내놓는다.
이들이 개인전이 아닌 아트페어 전시장에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SB펀드’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SB펀드’는 김성복 조각가의 영어 이니셜을 딴 펀드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동료 회원들의 작품 활동과 후배들의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해 만든 펀드다. 다음은 각 출품 작가들의 면면이다.
일상 또는 상상을 조각으로
김경민(43)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알록달록한 조각과 드라마틱한 연출의 조각 작품으로 만든다. 그는 작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외부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자신과 현재 호흡을 같이 하며 살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강화, ‘소풍’. 혼합재료, 130.3 x 97cm,2015.
▲권희연, ‘자연2-낮은곳’. 캔버스에 채색, 55 x 45cm,2015.
김경민 작가는 “상처와 고통으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작품을 통해 따뜻함과 치유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복잡함을 털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해학 넘치는 형상으로 삶을 조각하는 작가 김성복(51)은 모델 없이 작업하는 조각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삶과 꿈을 조각한다. “바람을 불어도 갈 길은 가야지”라며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내는 말처럼, 어려운 시기에 희망적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주문을 건 작품을 만들어낸다.
▲차동하, ‘축제’. 닥종이에 채색, 78 x 97cm, 2008.
▲김성복,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브론즈, 52 x 27 x 45cm.
일상의 무거움 앞에서 유쾌한 상상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담긴 그의 작업은 전래동화나 동물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현실에 맞춰 형상화한다. 그래서 익숙하고 알기 쉽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호랑이, 해태에서 차용한 동물 그리고 금강역사상 등은 원본이 있지만 김 작가가 독창적으로 재구성해낸 형상들이다.
기억과 경험으로부터 표정과 형태를 이끌어내는 그의 조각상들은, 거친 사회현실 앞에서 굳건한 의지로 맞서려는 모습을 드러낸다. 초인처럼 강해 보인다고 반드시 초인은 아니다. 겉은 강하고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속은 불안하고 회의적인 기운이 감도는 이중성이 과거 자신의 작품을 구성하는 대표적 특성이었다고 그는 되돌아본다.
오래된 재료 위에 그림 그리고,
누르는 만큼 튀어오르는 탄력성에 주목하고
찌그러진 서랍, 자루가 없는 삽날, 부식된 철판, 문갑 등 하나같이 낡고 오래된 바탕 재료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이강화(54) 작가. 이 작가는 세월이 녹아든 생명력을 캔버스에 그려 넣는다.
▲김경민, ‘내일을 꿈꾸며’. 브론즈, 채색.
▲김연규, ‘Botanical garden-1341’. 캔버스에 아크릴, 돌가루, 72.7 x 60.6cm, 2013.
“나무나 쇠 등 오래된 물건들,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 하던 사물들이 저를 만나 그 기능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바탕 재료로 쓰인 물건 중 나무는 몇 십 년이 지난 나무들입니다. 자연스레 세월이 녹아든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저는 그걸 실행에 옮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리는 소재는 채송화와 나팔꽃, 구절초, 엉겅퀴 등 흔해 눈여겨보지 않는 풀들이다. 이처럼 하찮은 풀꽃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태어난다. 무엇보다 그는 버려진 재료들을 수집하고 수선하면서 재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재탄생한 그림에 변주곡, 일상, 인생, 약속, 인연, 추억, 회상 등의 제목을 붙였다.
이강화 작가는 이름 없는 들풀과 인공이 닿지 않은 늪지, 허물어지는 벽 틈새의 식물들 따위를 그림의 소재로 삼는다. 그는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미술 매체에는 관심이 없다. 경제 논리에 지배되는 문화 현상을 미술 이론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문희, ‘Love Mondrian-Boogie Woogie’. 혼합재료, 65 x 54cm,2015.
▲이철수, ‘우리강산-여름’. 캔버스에 수묵, 채색, 혼합재료, 65 ×100cm, 2014.
창작의 방향을 회화로,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잡풀 정도를 묘사하는 구상 작업에 매진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자연에서 배우는 조형적 풍요로움에 대한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예의 주시하는 것, 오랜 기간 부단한 실험과 변모를 거듭해 온 그 작업의 실체는 바로 ‘자연을 구현하는 회화’이며 그것을 위한 과정이었다.
인간의 삶을 화두로 십 수 년 전부터 작업을 전개해온 조각가 권치규(49)는 물질이 어떤 변형의 압력을 받을 때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되려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하는 것이다.
권 작가는 “밑바닥에 떨어져도 우리는 다시 재기의 희망을 본다. 심지어 물도 자리를 내주게 했던 대상이 떠나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부정과 해체, 억압의 힘은 꼭 그만큼의 반대 힘, 즉 긍정, 생성, 자유의 힘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리듬이다”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권치규, ‘Resilience-forest’. 브론즈에 우레탄 페인트, 50 x 50 x 10cm,2015.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의 남다른 통찰력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권 작가는 2011년 개인전 이후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내 보이는 데 힘을 써왔다. “어떤 사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극단의 힘, 즉 그 사물이 허용하는 회복탄력성을 실험한다. 최고의 회복탄력성이 그 사물이 갖는 힘의 크기이다. 우리는 더 무거운 것을 들어보기 전까지 우리의 힘을 잘 알지 못한다. 모든 운동에는 힘이 들지만, 힘을 애써 쓰기 전까지는 힘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의 상대성이 힘을 가시화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나는 한 시대의 예술가로서 인간의 근원적 힘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발언한다.”
권치규의 작업은 존재의 철학, 예술의 담론과 미학적 내용을 표방하면서도, 미술사적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변하는 인간의 윤리를 담으며, 미술의 원초적 기능을 수행한다. 자연의 힘, 인간과 문명의 힘 등은 이미 관계 속에서 서로의 힘을 규정한다. 그의 작품들은 힘을 관계적으로 정의하고 작품으로 풀어낸다.
여기에 색을 담아 그 오브제에 형태가 잡히고 그것이 고된 연마를 견디어 색을 내보인다. 색은 작품의 존재 방식이고 그들의 기분과 표정, 성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요소로 조각을 통해 나타난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