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작가 - 김준]해체된 몸과 문신으로 욕망을 표현
▲박여숙화랑에 설치된 작품과 함께한 김준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벌거벗은 남녀의 몸이 뒤엉켜 마치 뱀들이 꽈리를 틀고 있는 듯한 그로테스크 이미지로 유명한 ‘문신 작가’ 김준(49)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이미지는 인간, 동물, 식물 등이 공상적으로 결합한 듯한 무늬 또는 장식이다.
몸과 살갗, 가죽이 공존하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물질의 유혹을 견딜 수 있는가? 네 욕망을 멈출 수 있나?”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한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몸이었죠. 살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바로 몸 때문에 벌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고 말한다.
▲김준, ‘Somebody-010’. C-프린트, 160 x 100cm, 2014.
초기 작품에는 사람의 몸 형상에 문신을 새겨 넣었다. 몸에 잉크를 주입해 만드는 문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었다. 육신의 고통과 쾌락, 상처와 욕망, 제도적인 억압과 그 해방이 공존하는 문신이라는 행위는 ‘상처와 장식의 일치’로 그의 작업에 나타난다.
천으로 표면을 씌운 스펀지 모양에 색칠을 한 후 박음질을 해 살덩어리 오브제를 만들고 그 위에 문신을 새겼다. 진짜 살덩어리 모양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시각적인 충격을 줬지만 시장에서는 외면당했다.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옥탑방과 지하 작업실을 무대로 작업하는 작가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재고 작품을 들고 10년 동안 이사를 다니다보니, 이골이 났어요. 보관할 공간도 없고, 모양도 흉측하다고 주위에서 말까지 나왔죠. 그래서 다 버렸습니다. 지금은 몇 개만 가지고 있는데, 현재 작업의 궤적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전시장에 걸었죠.”
‘삶의 무게’가 된 초기 작품도 함께 진열
삶의 무게만큼이나 짐이 된 그의 초기 작품을 버리고 난 뒤에 그가 터득한 것이 바로 3D 작업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3D 작업은 그에게 공간의 제약과 재고 걱정을 덜어줬다.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작업은 결과물의 물질이 중요치 않았어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 없어서 집에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가능했죠. 일종의 무한 작업공간을 얻은 것 같은 놀라움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는 3D Max라는 프로그램을 붓처럼 이용해 3차원 상에 픽셀을 만든다. 3차원 상에 붓 대신 픽셀로 만든 정교한 인체 모양에 피부를 입히고 그 위에 문양을 새겨 넣는다. 표현된 몸들은 그래픽으로 이뤄진 가상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살갗 같은 질감과 육신 같은 형태를 나타낸다.
▲김준, ‘Somebody-003’. C-프린트, 90 x 210 cm, 2014.
최근 작업에서는 날로 발전하는 첨단기술과 한층 능수능란해진 작가의 기교로 이전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정교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 저기 떠도는 사람 모양의 피부를 캔버스 삼아 그 위에 잉크로 가상의 문신을 새겼다.
첨단 테크놀로지 덕분에 질감이나 촉감이 두드러진다. 실제 몸을 찍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상의 감각이 실재의 감각보다 더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시대의 논리마저 담고 있는 이미지다.
그의 작품에 대해 민병직 디렉터는 “거짓 몸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감각에 은근슬쩍 유혹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가 역시 이러한 몸의 유희 혹은 시뮬라크라(Simulacra, 복제품)가 빚어내는 욕망의 논리에 어떤 거리감도 갖고 있지 않아 보인다. 몸은 비판의 감각 이전의 원초적인 감각에 대한 긍정이며, 고통과 거짓일지라도 쾌감 또한 수반되는 묘한 감각이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신작은 몸과 문신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문신은 그 자체로 육신의 고통이자 쾌락, 혹은 상처이자 욕망이다. 심미적인 위반의 정치학이자 미학인 문신은 제도적인 금기와 억압, 그리고 그 해방을 다층적으로 상징한다.
▲김준, ‘Somebody-005’. C-프린트, 120 x 120cm, 2014.
작가는 사실적이고 관능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신작과 영상 작업을 갖고 5월 22일∼6월 21일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썸바디(Somebody)’전을 연다. 물리적 부피가 있는 그의 초기 ‘가짜 살덩어리’ 작품도 함께한다.
‘Somebody’전은 문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단된 몸들이 현란한 색감과 형태를 이룬다. 자유로운 배치와 구성이 돋보이는 시리즈다. 문신이 새겨진 외곽선들의 자유로운 운용과, 여유 있게 자리한 여백들을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갗 위에 사치를 발라야 하는 현대인
작가는 절단된 몸의 피부에 악어나 타조가죽, 뱀피나 송치(암소 배 속에 든 새끼) 등 사치품을 대표하는 가죽 문양을 입히고, 동양적인 민화, 일상적인 만화 이미지를 뒤섞는다. 해체된 신체 부위를 연결하고 포개놓는 일련의 재배치를 통해 작가 특유의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김준은 ‘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미들을 다뤄왔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물신화된 기호들,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념과 신념은 살갗 위 문신으로 표현돼 시대의 욕망 지표를 보여준다.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때로는 그들의 무의식에 파고드는 욕망을 일종의 사회화된 문신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준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전,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 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 ‘Tattoo in My Mind’에서 몸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내놔 국내 미술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그 후 오브제 설치작업 대신 3D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디지털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광주 비엔날레, 국제 미디어 페스티벌 등에 초대돼 국제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2009년 런던 사치갤러리가 개최한 코리안 아이 전시에 참여했으며, 현대미술 출판사로 유명한 SKIRA 발간의 한국 현대미술 책의 커버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2015년 현재 베니스비엔날레의 위성 전시 중 하나인 Frontiers Reimagined 전시에 참가 중이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