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人 - 김영주 작가]“광명의 존재 사슴이 전하는 빛 이야기”
▲김영주 작가가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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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선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에게 흔히 사슴 같다고들 한다. 이 사슴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기억한다. 2010년 한 갤러리에서 처음 만난 김영주 작가는 사슴을 모티브로 한 ‘빛’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빛은 희망과 밝음, 그리고 감사함의 상징이었다. 어언 5년이 지나 다시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같은 주제로 열심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 전시 주제는 ‘빛이 있으라(Fiat Lux)’로, 제가 항상 작품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는데, 전 이 과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맑고 밝은 기운과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이 마음을 작가로서 작품에 표현했어요.”
빛을 표현하려고 사용한 소재가 사슴이다. 그런데 그냥 단순 동물로서의 사슴이 아니라 고대 신화 속 이미지를 차용했다. 대학 졸업 뒤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특히 소재 관련 고민이 컸다. 그런데 당시 민화에 대한 논문을 쓰다 발견한 고대 신화에서 사슴 이야기가 크게 와 닿았다. 해를 실어 나르는 광명의 존재인 사슴은 작가에게 어두운 세상에 빛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됐다.
▲김영주, ‘Song of solomon 2:9’.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83 x 107cm, 2015.
신화 속 이야기도 매력적이었지만, 자신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여겨져 더 친숙함을 느꼈다. 지금은 굉장히 밝은 이미지의 작가지만, 한 때는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고 세상에 자신 혼자 던져진 듯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 그림을 그리는 게 큰 위로가 됐고, 외로워 보이지만 또한 굳건해 보이는 사슴의 이미지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져 더욱 열심히 그렸다. 그렇게 만난 사슴과 첫 작업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그런데 이 고마운 사슴의 존재가 때로는 부담으로 적용하기도 했다. 그림 속에 많이 등장해 ‘사슴 작가’라고 불려, 본래 말하고자 하는 빛의 존재가 희미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빛 이야기가 예전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전 작업에서 거의 모든 작품에 사슴이 등장했는데, 올해 첫 개인전에는 사슴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작품도 꽤 있다.
▲김영주, ‘Song of solomon 2:17’. 알루미늄에 오일, 83 x 107cm, 2015.
“사슴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주요 매개체임은 분명해요. 하지만 작품을 보러 온 분들에게 제가 고대 신화 속 사슴 이야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 빛과 사슴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슴 이미지를 배제하고 빛에 대한 이야기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 대중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올해 새롭게 해봤어요.”
작업 방식에도 새로운 도전을 했다. 2010년엔 캔버스 위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설치 작품도 있었지만 전시장을 채운 건 주로 평면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작가가 작업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입체적인 작품들이 도드라진다.
알루미늄 판이 캔버스를 대신했고, 이 알루미늄 판을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커팅해 들어 올려 사슴 이미지를 표현하는 등 평면과 입체가 결합된 작품이 탄생했다. 병풍 같은 모양을 한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작품과 2015년 신작이 함께 전시돼 이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김영주, ‘신화의 빛-3’.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85 x 110cm, 2013.
“새로운 작업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었어요. 한 가지 고착화된 방식에 머물고 싶지 않았거든요. 2013년 새 작업 방식을 기획하고, 2014년부터 시도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를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거예요. 솔직히 예전과 비교해 작업 과정이 많이 번거롭고 힘들어지긴 했지만 보람 있고 벌써부터 새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속속 떠오르고 있어요.”
고대 신화 사슴 모티브로 ‘빛’ 이야기 전해
캔버스에서 알루미늄 판으로 새 시도 눈길
새 작업 방식은 이렇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 작품구상을 하고, 공장에서 알루미늄 판에 커팅할 부분을 계획해 컴퓨터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레이저 커팅을 거친 알루미늄 판에 사포질을 한다. 그 다음 물감이 제대로 알루미늄 판에 붙을 수 있도록 접착하도제를 바르고, 아크릴과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광택을 내는 바니시 처리를 한 다음, 초반 레이저 커팅한 부분을 공구 등을 이용해 들어올린다.
▲김영주, ‘Psalm 42:1’. 알루미늄에 오일, 83 x 107cm, 2015.
평면 작업과 비교해 이번 작업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 특별하다. 작가 또한 처음부터 의도했던 게 아닌데 작업을 하던 도중 발견했다고.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해 하루가 저물 때까지 작품과 함께 하다 레이저 커팅으로 들어 올린 부분이 빛을 받아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발견했어요. 그림자가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와 저녁에 서쪽으로 해가 질 때 다른 방향과 모습으로 변하더라고요. 작품이 자연스럽게 빛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다른 이미지를 전하면서 빛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어 뿌듯했어요.”
색감도 많이 밝아졌다. 과거 선호했던 회색 대신 에메랄드빛 화사한 색감과 꽃 이미지가 작품에 등장한다. 빛은 밝은 존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둠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빛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밝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작가는 이 점을 인식했다.
▲김영주, ‘Isaiah 32:15’. 알루미늄에 오일, 74 x 107cm, 2015.
“빛은 양면성을 가진, 자칫하면 어렵거나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예요. 하지만 전 제 작품을 보는 사람이 밝은 에너지를 받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우울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 화사하고 기쁨이 가득한 이미지로 표현했어요. 어둠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것이죠.”
작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어요”라며 “그 형형색색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를 바랍니다. 전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전시는 그림손 갤러리에서 6월 9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