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3주년 서울미술관, 새 공간에 3색展
▲서울미술관 제2전시실의 이대원 작가 작품 설치 전경. 사진 = 서울미술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제약회사 영업사원에서 회장 직에 오른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건립해 주목을 받고 있는 서울미술관(이사장 서유진)이 개관 3주년을 맞아 3가지 색깔 있는 전시를 6월 5일부터 마련한다.
먼저 미술관 공간을 재배치, 세분화하고 각 공간별로 주요 방문 타깃을 설정해 세대별, 연령별로 보다 다채로운 예술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4계절을 거닐게 만든 제1전시실
1층 제1전시실에는 관객들이 고루 즐길 수 있는 회화전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를 상설 운영해 부담 없이 다양한 회화 작품을 즐길 수 있게 꾸몄다. 서울미술관의 소장품과 현대회화 작품을 구성한 기획전으로,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풍경들을 선보인다. 화사한 봄날에 꽃이 핀 정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한 김덕기, 편안함과 그리움을 자아내는 봄날 풍경을 그린 전병헌, 오치균, 사석원, 김종학, 김병종의 작품이 걸린다.
▲「당신은 ‘명품’입니까?」를 설명하고 있는 정현목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여름의 공간은 도성욱·주태석·이숙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한 여름 숲을 연상시키는 풍경을 통해 빛의 분위기를 표현한 도성욱, 석파정 야외의 자연 풍경을 담아 ‘자연·이미지’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 주태석, 청맥과 보랏빛을 띤 엉겅퀴를 소재로 한 채색화로 한국적 정서와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표현한 이숙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가을의 공간에는, 화면 가득 노랗게 물든 잎들로 가을의 경험과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근택, 초가을의 고요한 자연 풍경을 밝은 색채와 감각적인 붓 터치로 그린 이마동의 작품이 걸렸다.
겨울의 감성 공간에는 광부들의 삶을 오롯이 담은 강원도 사북의 겨울 풍경과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산책했던 흔적만 남은 눈 쌓인 길을 표현한 오치균, 추운 겨울날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모습 등 이웃과 함께 사는 현실을 사실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한 황재형의 작품이 함께한다.
거장 이대원의 10주기 맞아 대표작 망라
한국 근대 회화의 거장 이대원(1921∼2005) 작가의 작고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가장 행복한 화가, 이대원’은 제2전시실에 마련된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으로 구성해 작가의 조형세계를 시기별로 볼 수 있다.
특히 나무를 모티브로 자연의 소박한 목가 풍경을 담아낸 초기 작품부터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붓질과 점묘다채(點猫多彩) 기법을 선보이며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중·후반 작품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농원’에 이르기까지 이대원 작가의 조형세계를 시기별로 조망한다.
▲샘 징크, ‘Small Things(Babies and Frogs)’, 혼합 재료, 36 x 36 x 10cm, 2012. 사진 = 왕진오 기자
이대원 작품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나무다. 특히 캔버스에 표현된 나뭇가지의 강렬한 윤곽선이 인상적이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생전에 가장 즐겨 불렀다는 동요 ‘과수원길’을 모티브로 한 공간을 마련했다. ‘과수원길’의 아름다운 음색이 흐르는 공간에는 이대원 작가의 500호 대작 ‘배꽃’과 어린 시절 추억을 그린 ‘초가’, ‘농원’, ‘나무’ 등 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17세기 바니타스 풍 그림들로 허무를 표현
제3전시실 현대미술 기획전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에서는 현재화된 ‘바니타스’(17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에서 많이 그렸던 화풍으로 삶의 허무, 허영의 덧없음 등을 화폭에 담았다)를 탐구하는 작품들로 꾸몄다.
끔직한 흑사병과 율법 중심의 종교에서 벌어졌던 금욕주의에 시달렸던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렸고, 작가들은 이러한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캔버스에 옮겨냈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은 중세에 있었던 암울하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복원해 현대화하고, 17세기부터 넘어 온 ‘바니타스’적인 이야기를 동시대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바니타스 회화에 그려진 여러 이미지들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대표적 표상인 ‘해골’은 생명의 유한성과 부패를, 꺼져 있는 ‘촛대’는 죽음이 다가옴과 시간의 헛됨을, 그리고 부식되는 책들은 ‘지식’의 유한성을 이야기한다.
바니타스 회화의 ‘해골’이 삶의 헛됨과 죽음을 이야기했다면 한승구 작가의 ‘Mirror Mask’는 매순간 다른 얼굴로 타인을 마주하는 현대인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생을 위한 처세나 SNS를 통한 끊임없는 자아 분열은 결국 마음속에 공허만을 채운다는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품 속 얼굴은 ‘자아의 죽음’을 말한다.
호주 출신 작가 샘 징크의 연작은 우리가 삶의 순간에서 만나게 될 모습을 정교한 조각으로 재현한다. 머리카락 한 올, 피부 속 혈관까지 집요하게 재현한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전시의 주제를 오롯이 보여주는 정현목 작가의 ‘Still of Snob’ 연작은 현대인들의 소비문화와 명품에 대한 헛된 욕망을 은유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 정물화 형식을 차용한 이 사진 작업들은 그럴듯한 정물 안에 짝퉁 명품 가방을 끼워 넣음으로써 작품을 보며 아무 위화감 없이 진짜 명품 가방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심리를 날카롭게 찌른다.
바니타스는 ‘의’가 없고 ‘뜻’이 없는 모든 행위는 헛됨을 의미한다. 이 현대판 바니타스 전은 우리들을 스쳐 지나가는 삶과 시간의 편린을 관조하며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제공한다. 전시는 8월 9일까지.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