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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 이응노 조각전]‘다원적 예술가’로 이응노를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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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7호 왕진오 기자⁄ 2015.06.29 14:00:36

▲생전의 이응노 화백. 사진 = 이응노미술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장르의 외연을 확장해나간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이자 ‘다원적 예술가’로서 이응노의 조각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이응노의 조각, 공간을 열다’전이 6월 16일∼8월 30일 대전 이응노미술관 전관에서 진행된다.

고암 이응노(1904∼1989)는 조각보다도 회화 작업에 주력한 화가였고 그의 주요 예술적 업적 역시 회화 분야에 집중해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요체인 ‘추상’이라는 개념과 연계해 볼 때 조각 역시 그의 일관된 미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르이다.

이번 전시는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이응노의 ‘조각’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로, 1958년 도불(渡佛) 이후 1960~80년 사이에 제작된 조각 100점과 드로잉 20점, 콜라주 2점, 회화 2점, 태피스트리 1점 총 125점을 선보인다. 이 중에는 고암의 아내 박인경(89) 여사가 올해 이응노미술관에 새롭게 기증한 고암의 미공개 조각 작품 57점도 포함된다.

▲이응노미술관 실내 전경. 사진 = 이응노미술관

이번에 소개되는 고암의 조각 작품들은 제작 시기·장르·기법 등 제각기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의 조각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사료로서 부족함이 없다. 특히 조각 작업을 통해 회화를 넘어 현대적 조형 감각을 형성해가는 고암의 여정을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응노만의 조형 감각 드러내는 조각들

전시는 이응노 조각의 양식적 변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한다. 아울러 그의 조형 의식이 회화와 상보관계를 이루며 변천해온 역사에 주목해, 이 과정 속에서 그의 조각에 깃든 이응노만의 조형적 특징은 물론 그의 조각과 회화에 공통적으로 깃든 미를 추정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응노, ‘군상’, 목재, 123 x 92.5 x 12cm, 1980.

전시실은 역시간 순으로 구성된다. ▲1전시실은 1980년대 ‘입체로 형상화된 군상’을 ▲2, 3전시실은 1970년대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된 이응노의 조형세계’와 ‘재료에 내재한 표현적 힘’과 파리 근교 생제르베에 마련했던 아틀리에 모습을 재현하고 ▲4전시실은 1960년대 ‘입체를 향한 조형의지의 발현’을 주제로 다룬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 즉 ▲고암이 1967년 서울에서 재판 받을 당시 점심으로 나온 나무 도시락을 쪼개 베니어합판 위에 붙이고 간장 고추장으로 색을 낸 ‘구성’ 작품 ▲사람들이 팔을 하늘로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높이 3.5m의 대작 ‘구성’ ▲간결하지만 완벽한 균제를 이루며 여섯 사람이 군무 형태를 취한 ‘군상’ ▲ 붓글씨의 리듬과 형태가 인체 형상으로 추상화된 ‘군상’ 조각 등은 주목할 만하다.

조각에 대한 고암의 관심은 1960년대 초에 제작된 콜라주 작품에서 그 기본적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표면의 거친 질감과 부조적 형태감을 중시하던 그의 콜라주 작품은 마티에르가 이루는 자유분방한 형태로 인해 이후 그의 조각이 추구한 비형상성(앵포르멜: 2차 대전 후 프랑스 비평가 미셀 타피에가 주창하고 지도한 추상회화의 한 경향)의 기본 틀이 됐다.

조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백림 사건(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 사건)으로 인한 2년여의 수감 기간 동안이었다. 이 시기에 고암은 옥중 배식으로 나온 밥풀과 종이를 이용해 전통 재료의 전형성을 넘어선 실험적 작품들을 창작했다.

고암의 조각은 1970∼80년에 ‘문자 추상’이나 ‘군상’ 등 회화 작업과 의미적 혹은 형태적 연관성을 가지며 더 과감하게 전개된다. 당시 고암은 회화의 추상 언어를 입체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바로 여기서 그의 사의적·서예적 추상에서 양식 실험의 대표작 ‘군상’ 또는 ‘구성’이라고 이름 붙은 1990년대, 연도미상의 조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추상회화와 나란히 발전한 고암의 조각들

‘문자 추상’을 비롯한 회화가 선두에서 예술적 혁신을 이끌었지만 그의 조각 역시 그림에 적용된 양식, 의미, 소재를 반복하며 회화적 예술 언어를 형상과 공간 속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구조로 풀어냈다.

▲이응노미술관 외부 전경. 사진 = 이응노미술관

이러한 맥락에서 고암의 조각 예술을 그의 추상회화의 발전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평면적 성취를 입체적으로 확장시킨 보편적 모더니즘 언어로 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한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은 “이응노의 조각 작품이 미술관에 기증되면서 고암의 예술 세계를 보다 폭넓게 감상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 등 다양한 장으로 외연을 넓힌 고암의 양식적 다양성을 확인하고, 국제적 작가로서 고암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응노미술관의 소장품은 이응노 화백의 부인이자 이응노미술관 명예관장인 박인경 여사가 기증한 고암의 조각, 회화, 판화, 드로잉 등 총 95점(조각 57점, 회화 3점, 부조 4점, 세라믹 4점, 스텐실 1점, 드로잉 26점), 그리고 박 명예관장이 직접 수집한 고암의 유럽 활동 관련 자료 등 모두 3576점으로 구성됐다.

이응노미술관은 2007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구입, 기증, 관리전환 등의 방식으로 소장품을 수집해오고 있으며, 이번 기증을 통해 총 1332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게 됐다. 이 가운데 조각은 70점으로 전체 소장품의 5.7%를 차지하며, 올해 기증된 조각 57점을 비롯한 작품 38점은 현재 소장품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한편 이응노미술관 전시실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최초 설계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0년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해 미술관 1, 2 전시실 유리 벽에 설치된 가벽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1980년 박인경 여사와 함께한 이응노 화백. 사진 = 이응노미술관

이응노미술관은 2005년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이 ‘산책(promenade)’을 주요 테마로 설계했으며, 계룡건설과 정림건축이 시공해 2007년 완공됐다.

유리창을 통해 내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자연의 빛, 주변을 둘러싼 정원, 그리고 이응노의 작품들과 동행하며 자연 속을 산책하는 듯한 감각으로 작품을 감상하도록 설계된 미술관이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주변의 자연색을 모두 품는 투명한 유리 건물로 설계돼 건물 밖에서도 미술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방감을 연출했다. 미술관 천장과 벽면을 이루는 격자 형태의 원목들은 외부의 빛이 미술관 내부에 자연스럽게 투과되도록 하면서 특별한 효과를 자아낸다.

2007년 개관 당시 흰색 시멘트와 뮤제오그래피(Museography, 전시학)를 최초로 적용한 ‘명품 미술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건축도 예술품이어야 한다’는 국제적인 미술관 짓기 트렌드에 부합해 규모가 작은 건축물로서는 타기 힘든 건축 상을 두 번(2007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07 한국건축가협회상)이나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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