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日만화 속 건축과 ‘노’의 세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 ‘交향’의 작품들.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미술 세계를 형성해 왔다. ‘일본 미술은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시각적 효과와 자연 변화에 대한 감각이 돋보이며 산수보다는 인물 묘사에 치중하는 것이 특색’이라고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용어 해설은 기술했다.
동양 미술권 안에서 일본화(日本畵)라는 이름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일본 미술들이 한국 내 전시관의 주요 전시 콘텐츠로 등장하고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또는 독특한 섬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일본발 미술 전시들을 살펴본다.
“부분을 보면 전체가 보인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속 건물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수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 속 등장하는 수많은 건축물이 한 자리에 모였다.
1985년 창립한 스튜디오 지브리가 발표한 애니메이션 작품에 등장하는 건축물의 배경 그림과 미술 보드, 미술 설정 등 제작 자료를 통해 대표적인 건축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설계의 근원을 알아보는 독특한 전시가 부산에서 진행 중이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빵집’ 장면이 재현된 전시장. 사진 = 대원미디어
9월 5일∼11월 29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건축전 - 부분을 보면 전체가 보인다’(이하 스튜디오 지브리)는 2014년 7월 12일 일본 도쿄 에도 도쿄 박물관에서 열린 ‘지브리 입체건조물’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전시는 건축가이자 건축사인 후지모리 데루노부가 실제 건축을 평론하듯, 만화 작품 속 건축물을 논하는 신선한 방식으로 꾸려졌다. 그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건물은 특징이 있다. 그것은 현실적임과 동시에 공상적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목욕탕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성도 그렇다는 것이다. 형태는 매우 공상적이지만 방의 배치나 구조, 재료, 세세한 공법을 보면 용도나 역할에 대해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사쓰키와 메이의 집이 서양식과 일본식 주택의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인간 내부에 의식과 무의식의 두 가지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집들의 경우 메이지 시대 유럽에서 새로 들어온 화려한 서양식 건물로 의식의 영역을, 전통과 함께 오래 살아온 일본식 건물을 무의식의 영역을 담는 그릇으로 삼았다는 해석이다.
애니메이션 속 상상의 공간 체험
전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 ‘가구야 공주 이야기’, ‘바람이 분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주요 배경을 디오라마(diorama,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든 축소 모형과 풍경)로 보여준다.
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서양과 동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목욕탕’ 모형이 성인 키를 훌쩍 넘는 압도적인 크기로 공개된다. 여기에 혼돈의 양식을 대표하는 간판 건축을 볼 수 있는 기묘한 거리의 실측 세트가 전시돼 애니메이션 속 상상 공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중심으로 1985년 설립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다.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성 그림. 사진 = 대원미디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의 온갖 정령들이 모여드는 온천장을 배경으로 소녀 치히로의 모험기를 다룬다. 자연친화적인 세계관, 황금만능주의, 전통적 가치가 혼돈된 가운데 치히로의 성숙한 변화가 펼쳐지는 성장 스토리다.
2001년 개봉된 이 애니메이션은 그때까지의 일본 역대 개봉 영화 중 최고 흥행 수입인 304억 엔, 관객 수 3500만여 명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과 함께 일본 역대 흥행 수입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제5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곰 상을 받았다.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해 작품의 완성도와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인정받았다.
日 문화에 스며든 가면극
국립중앙박물관, 중세 무대예술 ‘노(能)’전
죽은 이의 혼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승의 조연들과 대화를 나누는 ‘노(能)’는 14세기 말 일본에서 발달된 가면극이다.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점에서 현대의 뮤지컬과 비슷하지만, 가면을 쓰고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점이 다르다.
10월 6일∼11월 22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중근세관 테마 전시실에 꾸려진 ‘일본의 무대예술, 노’전은 가면극 노의 무대에서 사용된 가면과 의상 32점이 공개된다. 이를 통해 일본 문화에 스며든 노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야케 고하쿠, ‘마쓰카제(松風)’. 비단에 담채, 93.3 × 100.3cm, 20세기 전반.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600년 이상 전통을 지닌 ‘노’는 중세 무로마치 막부(무신정권)의 수장인 쇼군(将軍)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무사들의 고급문화로 성장했다. 근세 에도시대에도 막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발전하면서 일본 문화 곳곳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시에 공개된 가면과 의상의 일부는,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서양 문물의 유입에 따라 일시적으로 쇠락했던 노의 재기에 큰 역할을 한 우메와카 가문에 전래되던 작품들이다.
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화 작품들을 통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최근까지 실제 무대에서 사용됐던 노 가면과 의상을 통해 노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까지 살아 숨쉬는 문화임을 보여준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8월 11일∼10월 18일 서울관에서 진행한 ‘交, 향’ 전은 한국과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과 경향을 짚었다.
전시장은 한국과 일본의 1세대 디자이너들의 대표작을 비롯해 △20세기 한·일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섹션 △한·일 디자인 연대기 △한국 디자인스튜디오의 역사와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아카이브 섹션으로 구성됐다.
한·일 그래픽의 흐름을 짚다, ‘交, 향’전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부터 현재의 젊은 디자이너에 이르는 112명의 대표작 400여 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삶과 문화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풀어놓았다.
한국의 권명광, 김현, 조영제의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와 마스코트 호돌이,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탄생한 기업 디자인과 광고 포스터 등 현대적 디자인의 시작을 선도했던 작업이 전시됐다. 또한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 분야에서 한국의 현대적 그래픽디자인을 탄생시킨 안상수, 이상철, 정병규의 출판물과 작업들도 선보였다.
일본 그래픽디자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가메쿠라 유사큐, 나카무라 마코토, 나가이 카즈마사, 다나카 카즈마사, 다나카 잇코, 후쿠다 시게오의 작품을 통해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을 조명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열린 기획전 ‘交향’의 작품들.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여기에 1964년 도쿄 올림픽 포스터부터 상업광고에 이르는 일본 그래픽 1세대의 광범위한 작업과 스기우라 코헤이의 ‘만다라’ 시리즈 등 일본의 주요 출판물 60여 권을 전시했다.
자일리톨 껌 패키지와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사토 타쿠, 유니클로의 아트디렉팅으로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사하는 사토 카시와, 무지 아트 디렉터로 잘 알려진 하라 켄야의 작품 등 디자인 장르를 총망라한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시도로 그래픽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김영나, 슬기와 민, 워크룸 등 한일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역들의 작품도 나왔다.
이 전시는 그래픽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 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