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임소아] 세계의 기하학적 환원
(CNB저널 = 글·고충환 미술평론) 폴 세잔은 세계를 원통이나 원뿔 등 최소한의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몬드리안은 그 논리의 연장성에서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직을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형상을 다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지평선을 배경화면 삼아 근경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와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몬드리안은 똑같은 등식을 도심의 정경에다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하학적 환원은 아무래도 자연보다는 도심이 더 어울릴 듯싶다. 왜냐하면 자연은 보다 더 유기적이고 우연적이고 비정형적인 형태가 많은 반면에 도심은 상대적으로 기하학적이고 정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림이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직접 만든 각종 크고 작은 형태의 입체 구조물 위에 색면이나 색띠를 그려 넣은 임소아의 작업은 세계의 기하학적 환원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임소아, ‘With Sysipus’. 캔버스 위에 아크릴, 60 × 60cm, 2015.
도시적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위 모더니즘 서사에 바탕을 둔 순수한 형식논리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특정의 색채를 통해 정서적 환기를 꾀하는가 하면, 특히 관객의 참여에 의해 작품이 변주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첩을 이용해 여닫거나, 작품이 큰 경우 그 속을 드나들 수 있게 한 일련의 작품들이 마치 서랍을 열어 보거나 장롱 속을 기웃거리는 것 같은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작가의 작업에서 주목되는 것은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인데, 작가가 제안한 처음의 형태를 관객들이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관객들이 일방적인 향수자로서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미감을 가지고 창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이 일련의 작업들은, 모든 결정적인 것을 의심하고 비결정의 가능성을 실험하는(그것이 형식이든 아니면 사유든) 예술의 전통적인 미덕을 떠올리게 한다.
▲임소아, ‘Spera-spero(B)’. 캔버스 위에 아크릴, 100 × 60cm, 2014.
▲임소아, ‘Spera-spero(R)’. 캔버스 위에 아크릴, 100 × 60cm, 2014.
그리고 이는 그대로 롤랑 바르트(20세기 중엽 프랑스의 평론가)의 ‘저자의 죽음’ 논의와도 통한다. 즉 작품이 최종적으로 완결되는 지점을 저자가 아닌 독자 즉 관객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간섭 행위나 해석 행위에 의한 변형이나 변주로 본 것이다.
색면과 색띠의 콤포지션(회화·조각·건축 등에서 말하는 구도), 그리고 여기에 입체의 구조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일련의 작업들은 일종의 후기 미니멀리즘의 한 경향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형물 속을 거닐거나 드나들 수 있게 한 작가의 작업은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논객인 마이클 프리드의 전언을 상기시킨다. 프리드는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서 그 속을 거닐 수 있게 한 일련의 작업들을 문자적 오브제라고 일컫는다. 이로부터 마치 삶을 그대로 흉내낸 듯 한 일종의 연극적 상황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임소아, ‘Constantia’. 캔버스 위에 아크릴, 100 × 100cm, 2015.
완벽한 실루엣의 ‘사각형’ 색면 추상화를 통해 국내외 유명 컬렉터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임소아(50) 작가의 작품들이 11월 5∼30일 대구광역시 소헌컨템포러리에서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국내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홍콩 등 해외 각지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임 작가가 3년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이다. 특히 대구에서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순수 감정만을 표현하기 위해 사각형 이용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이 사용된 화면은 명도, 채도 100에 가까운 선명한 컬러감을 자랑한다. 날렵하고 정확한 외곽선은 남다른 완성도로 심미적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하나의 캔버스 안에서 통일된 계열의 색을 오랜 시간 동안의 붓질을 통해 완성한다.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쌓아 올라간 그의 사각형은 시간을 담았기에 색의 깊이가 남다르다. 때문에 평면 속 또 다른 공간을 마주하는 듯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임소아, ‘Optatium’. 캔버스 위에 아크릴, 50 × 50cm, 2015.
특히 여러 번의 색 중첩 속에서도 붓의 흔적 없이 순수한 색의 매력을 전하며 처음부터 그 색이었던 듯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완벽함을 보여준다.
임 작가가 그려내는 색면 추상 그림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추상화들 중 가장 단순하고 가장 순수한 것들을 표현한다. 절제하고 또 절제해 가장 최소한의 색과 단위로만 표현한 몬드리안의 추상처럼, 임 작가의 색면 추상에는 완전한 도형인 사각형과 색만이 남아 화면을 밝힌다.
이 사각형은 최상의 완벽한 상태에서 질서와 영원성에 대한 무한의 동경을 담고 있다. 단순한 도형에서 벗어나 조형이 가진 순수한 심미성과 심오함을 내포한다.
성신여자대학교와 독일 국립브라운슈바익 조형미술대학, 동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독일에 거주 중인 임소아 작가는 리터뮤즈음(독일),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C15 하인즈&울라 컬렉션(독일), 호벡 컬렉션(스위스), 피르마젼 미술관(독일)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안드레 에바드 국제 미술상 공모전 당선으로 전시가 예정돼 있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리 = 왕진오 기자)
고충환 미술평론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