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2제 ‘침묵의 시선’과 ‘어둡게 빛나는’
▲사타, 사타릿(Satarlit) #01, C-프린트, 80 x 12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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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최근 ‘개인주의자 선언’을 집필한 문유석은 자신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며 오히려 혐오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지하철에서도 사람이 옆에 앉는 게 싫어서 구석의 빈자리를 찾아다니고, 산에서는 시끌벅적한 등산객 무리가 싫어 발길을 돌리기까지 한단다. 저자는 혼자 살 수 없기에 요령껏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본심은 개인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과거 품앗이 풍습 등으로 서로 상부상조 하며 공동체 사회로 불렸던 한국은 이제 개인주의 사회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자신의 영역을 침해받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오죽하면 “이불 밖은 역시 위험해”라는 소리까지 나올까. 타인과의 교류를 피하거나 그다지 원하지 않는 히키코모리족, 나홀로족도 더 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더 정확하게는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지 않기 위해 철저히 도피처를 찾아 자신을 숨기며 꽁꽁 싸맨다. 그리고 진짜 내면을 감추고, 가면으로 포장한 자신을 내놓는다. 이런 현대인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전시가 있어 주목된다.
방독면 쓰고 망원경으로 타인 관찰
‘김판묵 개인전 - 침묵의 시선’
김판묵 작가의 개인전 ‘침묵의 시선’은 작품의 강렬한 인상이 일단 눈길을 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방독면으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다. 그래서 방독면 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나마 인물의 눈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눈빛까지 가려진 작품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혼자 있거나, 아니면 같이 화면에 같이 등장하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몰라주길 바라는 듯 눈을 마주치질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본다.
망원경의 존재는 그늘 속의 인물처럼 자신을 감추고 주변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상대방을 관찰하려는 태도다. 타인의 손길이 조금만 닿아도 화들짝 놀라 껍데기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거북이처럼.
▲김판묵, ‘유어 셀프(Your Self)’. 장지에 먹, 콘테, 채색, 53 x 40.9cm, 2015.
동시에 망원경은 자신은 철저히 감추면서도 타인의 삶은 깨알같이 관찰하려는 태도, 또는 상대방의 모습을 핥듯이 훑어보는 관음증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다. 갤러리 토스트 측은 “작가는 방독면뿐 아니라 망원경을 등장시켜 외부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외부를 바라보려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고 밝혔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1998)는 이런 현대인의 욕구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평범한 샐러리맨 트루먼(짐 캐리 분)의 모든 사생활이 노출된다. 어떻게 태어났고, 무엇을 먹고 입으며 하물며 누구랑 사랑을 하는지까지. 트루먼 본인은 몰라도 시청자들은 영상으로 트루먼의 생활을 엿보며 즐거워하고, 트루먼 쇼의 시청률 또한 폭발적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리얼리티 쇼도 마찬가지다. ‘룸메이트’ ‘나 혼자 산다’ 등은 타인의 삶을 방송으로 보여주고 대중들은 즐거워한다. 최근 방송 시작을 알린 ‘타인의 취향’에서도 개그맨 유세윤, 모델 겸 배우 스테파니 리, 방송인 유병재, 영화감독 장진, 가수 잭슨(갓세븐 소속)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추구한다.
관음증의 폐해 사례는 현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가 5년 새 6배 가까이 늘어났다. 타인을 엿보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쳐 범죄 수준까지 이른 것. 작가의 작품은 이런 현대인의 모순된 욕구를 망원경을 통해 보여준다.
방독면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가리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본능의 반영물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다. 예컨대 더럽고 치사한 상황에서 본래의 자신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웃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방독면을 쓰고 눈웃음을 지으면 가짜인 자신은 상대방에게 웃는 것처럼 보인다. 방독면 아래 진짜 자신이 살벌한 욕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본능의 절제를 유지시켜주는 인간의 가면(방독면)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 본능에 의해 생성된 개인의 방어 체계라 생각한다. 나 또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가면을 방독면이라는 소재에 빗대어 해석하고 그 속엔 가장 원초적인 내면을 가려주는 가면부터 제한된 시각, 불편한 호흡, 필터링, 왜곡된 소통, 침묵의 시선 등 많은 뜻을 담고 있다”며 “우리들의 가면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단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생각하며 겪었을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인식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갤러리 토스트에서 12월 1일까지.
가리거나 안 보이게 흩날리거나
‘어둡게 빛나는’전
방독면으로 얼굴을 가린 ‘침묵의 시선’전처럼 이소연, 사타 작가의 2인전 ‘어둡게 빛나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평범하지 않다. 머리 위에 커다란 동물 가면을 쓴 소녀, 다른 곳은 모두 멀쩡한데 얼굴 부분만 안 보이는 인물 등을 볼 수 있다. 두 작가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을 선보인다.
이소연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는 무표정하다. 시선이 다정해 보이진 않으며 머리 위에 큰 가면까지 쓰고 있다. 새, 말 등 가면의 종류도 다양하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큰 가면 안으로 얼굴을 숨겨버릴 것만 같은 소녀의 모습에 호기심이 간다. 우스꽝스럽게 큰 가면 때문인지, 화면 속 소녀의 얼굴 표정 역시 가면의 그것 아닌가 하는 착각도 준다.
전시를 기획한 박은혜 큐레이터는 “이소연의 작업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세계로 진입하면서 구체화됐다. 굳이 낯선 세계라 말하는 이유는 공간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이라며 “낯선 세계의 이방인이었던 그녀는 자신을 돌아봐야만 했고,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직접 대면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바라보고자 했던 어린 소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서 바깥으로 시선을 이동해 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지점은 관람객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으로 확장된다”고 밝혔다.
▲이소연, ‘말 가면’. 캔버스에 오일, 130 x 100cm, 2015.
사타는 자화상이라고 하면서도 얼굴을 철저히 감춘다. 전구 더미를 머리에 쓰거나 빛의 잔상으로 얼굴을 숨기며 나타난다. 빛의 잔상은 얼굴 대신 어두운 공간에서 실제로 발광하는 빛으로 시선을 옮겨가게 한다. 빛나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는 모순이다.
박 큐레이터는 “사타는 빛에 둘러싸였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그것은 뜨거웠고 눈이 부셨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과도 같았다고 고백한다”며 “지난한 일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점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제나 누군가와 공유해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타가 경험한 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일종의 도피처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반복적이면서도 무수한 변수가 발생하는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도피처가 아닐까 싶다. 이를 사타의 작업에서, 그리고 전시 공간에서 직접 경험해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갤러리 룩스에서 11월 22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