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스] “눈으로만 작품 보니? 코·귀는 어쩌고”
오감 활용 전시회 등 감상법 변화 트렌드
▲서울미술관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전에 전시된 윤병락 작가의 ‘복숭아’ 작품 앞에서 한 어린이가 복숭아 향을 맡고 있다. 사진 = 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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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독특한 소재로 주목받았다. 밤이 되면 신비한 마법을 지닌 황금석판의 힘으로 전시 작품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다뤘다. 2006년 첫 개봉 뒤 인기에 힘입어 2009년 2편, 2014년 3편까지 개봉됐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데는 박물관 보안관과 전시물 간의 환상적인 케미(어울림)도 있었지만, 박물관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것도 한몫했다. 일반적으로 조용히, 눈으로만 작품 감상을 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전시물과 역동적으로 함께 호흡하는 모습이 흥미를 유발했다. 그런데 이게 이젠 꼭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점점 미술관이 활동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며, 감상 방식에도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PART 1. 전시장에서 킁킁, 짹짹?
오감으로 느끼는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전
서울미술관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전에서는 킁킁 냄새를 맡는 관람객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계절의 변화 속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풍경들을 향기와 소리로 느끼는 전시다. 전시를 감상하는 데 가장 위주가 되는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까지 오감을 다채롭게 사용해 전시를 즐기는 맛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전시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기본적으로 전시장에 여러 소리가 들린다. 서울미술관의 옥외 공간인 석파정에서 직접 채집한 바람과 숲의 소리다. ‘봄’ 섹션의 이대원 작가 작품을 감상하면 동요 ‘과수원길’이 흘러나온다. 작가가 생전 가장 즐겨 불렀다는 노래다. 이밖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등이 울려나와 미술관이 아닌 숲속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전시장에 배경 음악을 까는 것은 색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시와 관련 없는 클래식류의 배경 음악 또는 전시장을 활용한 음악회 정도가 일반적이다. 반면, 이번 전시는 음악을 단순 배경이 아닌, 전시의 일부로 차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전은 전시 내용에 맡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등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는 콘셉트로 열렸다. 사진 = 서울미술관
‘여름’ 섹션에 배치된 윤병락 작가의 ‘복숭아’ 작품 앞에서는 실제로 복숭아 향을 맡을 수 있다. 작품 근처 천장에 자동 분사 장치를 달아 주기적으로 향이 뿌려진다. 그래서 마치 진짜 복숭아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를 감상할 때 주변 배경을 어지러이 꾸미면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지만, 이 전시는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해 관람객의 호응을 받고 있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일반적으로 3D를 평면화한 것이 작품의 이미지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직접 향기를 맡고, 소리도 듣는 등 오감을 활용해 전시를 즐기도록 구성했다”며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을 이용해 감상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전시는 2016년 8월 28일까지.
PART 2. 전시장에서 호로록 짭짭?
갤러리·복합문화공간에서 먹으며 작품 감상
‘음식물 섭취 금지’는 전시장의 대표적 키워드다. 그런데 갤러리 탐 현장은 바로 커피와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갤러리 탐은 커피 전문 브랜드 탐앤탐스가 신진 미술 작가 발굴을 위해 2013년부터 선보인 프로젝트다. 총 30여 명이 넘는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 및 홍보의 기회를 제공했다. 현재는 2015년 마지막 전시로 서울 소재 탐앤탐스 블랙과 탐스커버리 7개 매장에서 제13차 전시를 진행 중(12월 29일까지)이다.
블랙 압구정점은 이주연 작가의 ‘무빙 드로잉 - 북 스티치(Moving Drawing - Book Stitch)’전, 도산로점은 김경화 작가의 ‘꿈을 그리다’전, 청담점은 박대수 작가의 ‘더 나은 세상으로’전, 이태원점은 S.JUN 작가의 ‘전요(纏繞)’전, 명동눈스퀘어점은 임미나 작가의 ‘도시 – 욕망을 생산하다’전, 청계광장점은 성유림 작가의 ‘각자의 숲, 각자의 계절’전을 선보이고 있다. 탐스커버리 건대점에서는 이은지 작가의 ‘폴링 스노울리(Falling Snowly)’전을 감상할 수 있다.
▲이은지 작가의 ‘폴링 스노울리(Falling Snowly)’전이 열리는 탐스커버리 건대점 전경.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탐앤탐스
최근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앨리스80도 음식 및 음주류가 반입 가능한 공간에서 개관전 ‘테이크 미, 잇 미, 드링크 미 앤 하이드 미(Take Me, Eat Me, Drink Me And Hide Me)’를 선보였다. 올 초엔 또 다른 복합문화공간 르뮤제에서 유용상 작가와 와인업체와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선보였다. 와인을 마시며 작품을 감상하자는 연출이다.
음식을 먹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정통 갤러리-미술관보다는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복합문화공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카페, 음식점 등 기존 공간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미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전시를 꾸준히 유치하는 형태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전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드나드는 공간에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탐앤탐스 측은 “갤러리 탐을 통해 신진 작가들에겐 작품을 보다 대중적으로 알릴 기회, 고객에게는 커피와 함께 젊고 창의적인 미술 작품을 감상할 공간을 제공했다. 이로 인해 예술과 대중이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기획 의도”라며 “편안한 공간에서 음료를 마시며 전시를 즐길 수 있어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유용상 작가는 르뮤제 전시의 경험을 “오던 사람만 또 오는 미술관과 달리, 경직된 어깨를 풀고 와인을 마시며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관람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재밌는 전시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PART 3. 전시장에서 우당탕탕?
구르고 뛰며 처해진 상황 체험하는 전시
‘음식물 섭취 금지’ 다음으로 전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구가 ‘뛰지 마시오’ ‘떠들지 마시오’ ‘손대지 마시오’다. ‘No’의 행진이다. 하지만 체험 전시는 이런 감상 방법에서 모두 벗어난다. 시각이 아닌, 온몸으로 전시를 느끼면서 뛰기도 하고, 작품을 제집 물건인 마냥 만지기도 한다.
11월 더 페이지 갤러리가 선보인 ‘평+안(平+安)하다’전은 ‘손대지 마시오’ 공식을 벗어나 눈길을 끌었다. 20세기까지 각 시대 미술계를 풍미한 작가들의 회화와 함께, 가구 디자인에 혁명을 일으킨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 작품을 한 공간에 모았다. 기존엔 이 아트 퍼니처를 좌대 위에 설치했지만, 이번엔 전시 공간에 턱하니 내려놓으며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고 앉아볼 수 있게 했다. 이은주 더 페이지 갤러리 큐레이터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 위에 앉기도, 만져보기도 하는 형태로 감상하면서 작품을 더 친밀히 느꼈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호응이 좋았던 전시로,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이처럼 별난 전시를 계속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감상의 기본 요소인 시각을 차단한 체험형 전시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어둠 속의 대화’ 전시장. 사진 = 엔비전스
체험 전시의 고전으로 꼽히는 ‘어둠 속의 대화’는 최근 무한도전에 비슷한 환경의 블라인드 카페가 소개되면서 더불어 화제가 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공간에 들어가 벽을 더듬으면서 걸어가는 과정에 여러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전시의 가장 기본인 시각을 오히려 차단하고, 눈이 아닌 마음으로 전시를 보고 느끼는 형태로 꾸준한 인기다. 이밖에 올해 여러 첨단 기기를 체험하는 ‘어벤져스 스테이션’전, ‘로보틱 아트’전이 열렸고, 착시 효과를 위주로 하는 트릭아이 미술관도 꾸준히 관람객 몰이를 했다.
체험 전시가 꾸준히 호응을 받는 데는, 자유롭게 전시를 즐기자는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가족 단위 관람객에 인기가 높다. 트릭아이 미술관을 방문한 한 관람객은 “보통 미술관, 박물관에 가면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얘기도 맘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지루해 하거나 힘들어 한다. 체험형 전시에는 이런 제약이 없으니 마음껏 편하게 즐길 수 있어 다들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PART 4. 손가락으로 넘기는 미술관
온라인 미술관·스마트폰 앱 등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전시 감상법도 트렌드다. 바쁜 생활 탓에 주위에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이 있어도 찾기 힘든 사람이 많다. 이런 현대인을 위해 손에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통해 바로바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상원 미술관, 보름산 미술관, 사비나 미술관, 헬로우 뮤지엄 등은 11월부터 온라인 미술관 프로그램을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상원미술관은 왕골 공예 작품들을 집중 조명하고, 각 작품들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조형적 아름다움을 다루는 ‘왕골공예 아카데미’를 스마트 콘텐츠 형식으로 제작해 PC 및 스마트 기기로 볼 수 있게 한다.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전시 감상 방법이 더욱 보편화 전망이다. 사진 = CNB포토뱅크
보름산 미술관은 전통 한옥의 지붕을 마감하는 망와를 주제로 한 ‘춤의 노래’, 사비나 미술관은 전시 정보와 음성 해설, 작가 인터뷰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버추얼 전시 감상 투어’, 헬로우뮤지엄은 전시 교육 프로그램 ‘온라인 레슨’을 온라인에 선보인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경주, 공주, 부여, 김해박물관 등에 대한 오디오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투어 가이드’ 앱을 내놨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도 400여 작품을 스마트폰 앱으로 제공하는 등 점차 ‘디지털 미술관’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전시 감상은 점점 현대인의 대표적인 감상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사립미술관의 온라인 미술감상·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김선영 대표는 “온라인 미술 감상·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에 방문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미술 감상 기회가 제공됨으로써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폭이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