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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①] 산수화로 마음 읽는 3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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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윤하나 기자⁄ 2016.02.01 14:26:17

▲김가을, ‘산수, 노닐기 - 정경(情景)’. 판화지에 혼합 재료, 69 x 98cm, 2015. 사진 = 청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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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윤하나 기자) 글로 풍경을 묘사하는 방법은 산수화를 그리는 방법과 닮은 구석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풍경 묘사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작가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이나 에세이 등 서사로 통하는 이야기에는 모두 작가가 인식한 현실이 반영된다. 현대적 산수화의 풍경화법에도 이런 종류의 작법 구분이 가능하다.

우리는 대체로 산수화 하면 가장 먼저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린다. 이 둘은, SF소설과 수필의 작법 차이만큼이나, 작가가 풍경을 산수화에 접목하는 방법에서 서로 다르다. 우선 ‘몽유도원도’는 도가적 낙원인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세상에 없는 곳을 험난한 산세와 화사한 복숭아꽃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현실의 장치들을 편집해 현실에 없는 정신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인 ‘금강전도’는 정선이 금강산을 직접 다니며 실제 풍경을 담아낸 것이다. 실제 풍경을 관찰하며 실증적 태도로 현실을 파악하려는 그 시대의 실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주변의 풍경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해 그리는 것이 바로 산수화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산수화의 원래 목적도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환상을 이끌어오는 방식까지 이용되기도 한다.

▲김가을, ‘산수, 노닐기 - 정경(情景)’. 판화지에 혼합 재료, 69 x 98cm, 2015. 사진 = 청림갤러리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산수화를 그려낸 세 작가의 전시가 최근 열렸다. 이들의 산수 접근법을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첫째로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방법으로서의 산수화다. 이는 몽유도원도와 비슷하게 정신적인 가치를 풍경과 결부시켜 표현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주변의 산과 강을 직접 오가며 경험한 것을 그리는 방식이다. 진경산수화처럼 자신이 본 그대로를 그리려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환상으로서의 풍경이다. 실재하는 혹은 실재했다고 전해지는 풍경을 변형을 통해 이질화 시키고 환상성을 더하며 자신 안에서 실재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장자 철학을 담은 산수화
청림갤러리 - 김가을 ‘산수(山水), 마음 아득한 경지에서 노닐다’ 

전통적인 산수화는 실존하는 풍경인지 여부보다 필묵의 변용과 기운생동을 전하면서 자신들이 공유하던 자연관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주변에 실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보다 학문적 인식을 바탕으로 정신적 이상향을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도가 사상의 최종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구체화하기 위해 가상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청림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김가을의 전시는 산수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형상화한다는 면에서 무릉도원도의 방식을 따른다.

작가 김가을은 바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작가는 “산수는 심오한 마음에 비춰진 하나의 현상”이라며 “장자의 사상을 형상화하고 그를 통해 삶의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의 정신적 자유라는 삶의 태도를, 산수화의 유한한 형식을 통해 무형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것이 작가의 목표라고 전했다.

▲빛의 유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김가을의 ‘산수, 노닐기 - 정경(情景)’. 왼쪽이 밝을 때, 오른쪽은 어두울 때 보이는 모습이다. 판화지에 혼합 재료, 116.5 x 80cm, 2015. 사진 = 청림갤러리

그의 작품은 빛의 유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빛이 있는 상태에서 작품은 수묵과 마블링 기법(Marbling, 물 위에 유성 물감을 떨어뜨린 후 저어서 종이를 덮고 물감이 묻어나게 하는 기법)을 통해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담아낸다. 수묵이 가진 흑백의 오묘함을 통해 대자연의 활력을 반영하고, 마블링을 이용해 전혀 기대치 않은 우연성을 담아낸다. 반면 암흑 속에서 보는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산수를 품고 있다. 야광 재료를 이용해 칠흑 같은 어둠 속 아득한 경지와 편안함, 자유를 표현했다.

커다란 상상의 공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듯, 작가는 작품 속 빈 배와 빈 공간을 통해 천지의 온전한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전시는 1월 31일까지.


실제 북한산을 타면서 그리다
한옥갤러리 - 진희란 ‘북한산 산수화’

작가 진희란의 접근법은 진경산수화를 닮았다. 그는 자신에게 친숙한 북한산을 통해 선조들이 산과 산수에 담은 정신을 파악하고자 한다. 북한산은 돌산으로, 다른 산에 비해 풀과 나무가 적어 산세를 파악하기 쉽다. 작가는 북한산에 직접 오르며 관찰한 산의 모습을 전통적 한국화 기법으로 담아냈다. 

작가가 그려낸 북한산은 그 구석구석마다 인적을 찾을 수 있다. 아주 작게 그려진 사람의 형태는 작가가 그린 이곳이 정념의 풍경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오르내리는 산임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사소한 듯 발견되는 인간 존재들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담당하며 작품을 언어로 읽어내게 유도한다.

작품 ‘노적봉’을 유심히 보면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를 피하고자 바삐 전망대에 오르는 등산객 두 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그림의 왼쪽 구석에 우산을 쓰고 숨죽이고 있는 다른 한 명도 보인다. 그는 바위에 앉아 저기 전망대 끝에서 또 다른 정상을 올려 보는 어떤 사내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망대를 이미 떠나 산을 내려가는 우산 쓴 이까지 발견하고 나면, 진희란의 그림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이야기 퍼즐이 되고 만다. 발견하고 관찰하는 만큼 그림이 주는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진다.

▲진희란, ‘노적봉’. 순지에 수묵담채, 111 x 183cm, 2015. 사진 = 한옥갤러리

가는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직접 산에 올라 드로잉을 하고 그 장소, 그 시간의 인상을 잔잔한 기록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남은 인상은 결국 서로 관계를 맺으면 그림 속의 이야기로 살아난다. “전체를 보면 거대한 산이지만 그 속 구석구석에 사람이나 동물 등이 각자 갈 길을 가는 모습을 표현해 거대한 자연 속에 소소한 자연스러움을 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가 산수를 그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시는 2월 5~17일까지.


왜곡된 환상의 풍광
공평갤러리 - 조혜진 ‘멘탈스케이프(Mentalscape)’

작가 조혜진은 일상 속 풍경을 왜곡시켜 낯설음과 공포를 그려낸다. 배경으로 인식되던 풍경이, 어느 순간 주인공으로 다가오는 기묘한 순간을 표현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한강 공원이나 코스모스 길, 마을 뒷산 등 친숙한 풍경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 제목이 이질적인 이미지와 만나 기이한 인상을 남긴다.

▲조혜정, ‘호렙산’. 캔버스에 혼합매체, 162 x 130cm, 2015. 사진 = 공평갤러리

또한 작가는 성경 출애굽의 성스러운 장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시를 받는 장소인 시내산(호렙산)에 관한 작업도 병행했다. 현재까지 정확한 산의 위치가 밝혀지지 않은 시내산은 아직까지 성서에만 존재하는 산이다. 성서의 이야기처럼 “성스럽고 고결한 신의 존재를 산에서 만나는 것”이 작가에게 장소성에 관한 영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이 미지 속 장소에 작가는 숭고함과 겸손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있을 것이라 믿어왔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산수를 작가는 실험적인 표현 기법으로 먼저 형상화한다. 마치 불꽃이 타고 있는 듯 표현된 시내산의 산세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도전의식으로도 보인다. 전시는 1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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