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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② 이화여대 조윤원] 무너져내릴줄 알면서도 붙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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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김연수 기자⁄ 2016.02.04 08:54:31

▲작가 조윤원. 사진=김연수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오래전에 잊혀져버린, 유럽 어느 한구석엔가 있었을 작은 나라 왕의 접견실이 여태껏 남아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계단을 올라서야만 앉을 수 있는 높은 의자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샹들리에. 주위를 둘러싼 그리스 신전을 닮은 기둥들과 거대한 촛대는, 세월이 불길인양 또는 동굴의 종유석인양 부식되고 마모되고 쌓이기를 반복한 모습이다. 변화무쌍한 세월을 겪은 듯한 형상들의 표면에 남은 황금빛은 한때 영화로웠던 순간을 애써 상징하는 듯하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자신의 거대했던 설치작업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며 작가 조윤원은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어떤 말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세월과 시간성을 이야기하며,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모두 느꼈을 만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얼굴이 대게 그렇듯이. 

깨져 없어져버릴 것 같아 더 아름다운 세상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풍경을 우리는 TV 화면에서 일상적으로 만난다. 그러나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을 매일 허락받는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서로가 있었던 일을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웠을 때, 그런 행복한 감정이 마치 바른생활 교과서의 삽화를 보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회라는 냉혹한 전쟁터에 내쳐질 것을. 그렇기에 그 행복을 온전히 가지지도 못 한다. 

▲조윤원, ‘왕좌와 기둥, 촛대와 샹들리에가 있는 왕실 풍경’. 가변 설치, 우레탄 폼, 합성수지, 철판, 석고, 섬유, 함석 슬레이트 및 혼합 재료. 2015.

▲조윤원, ‘샹들리에와 조각이 있는 풍경’. 가변 설치, 철, 석고, 철, 섬유. 2014.

작가 조윤원이 보는 현실은 연약하다. 조금만 충격을 줘도 부서질 것 같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없어질 것을 알기에. 작가는 그렇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온전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아름다운 환상을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업은 불안하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아름답다.

“내가 보고 느끼는 지금의 아름다운 현실은 그 껍질로 간신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말 한 마디, 시간 한 토막만 더 얹어도 그것은 파삭, 부서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견고하게 쌓아올려도, 그 웅장함은 곧 흘러내리니 감히 건드릴 수조차 없다.”

“흐르는 시간에 푹 잠겨서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도 서글프고 또 서럽다. 한가운데 있음에도 아무것도 건져 올려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조윤원의 작업노트 중

“자연에서 채취했다고 자연스러운 재료 아냐”

작품은 주재나 소재뿐 아니라 재료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한다. 특히, 입체 작업이나 설치 작업은 그런 효과를 평면 작업보다 훨씬 극명하게 드러내곤 한다.

웅장하게 표현된 환상적인 이미지의 설치 작업은 사실 일상적인 물건들이 뼈대가 된다. 신전에 있는 것 같은 거대한 기둥도 알고 보면 슬레이트를 둥글게 말아놓은 것이고, 침대 헤드 같은 폐가구와 철판 등을 기묘한 형태로 용접해 놓았을 뿐이다. 거기에 조소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써보는 합성수지와 우레탄 폼, 물감 등을 더해 원래의 형상을 와해시킨다.

▲조윤원, ‘곤충껍질과 식물로 지은 정원새의 둥지’. 가변 설치, 철판, 섬유, 비즈, 깃털, 나무뿌리, 합성수지, 우레탄, 돌 및 혼합재료. 2013.

▲조윤원, ‘건설 드로잉’. 112 x 162cm, 캔버스에 아크릴, 크레파스, 디지털 프린팅. 2011.

그녀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재료들이 현대의 산업 재료이긴 하지만, 작업에서 재료가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친근하며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재료들을 사용할 뿐이다. 작가는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를 쓰는 것이 오히려 삶과 괴리되는 느낌이 든”단다. 현대의 삶에서는 전통적인 조각 작품에서 사용하는 대리석이나 나무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재료’ 같다고 덧붙인다. 

“더 재미있는 접근으로 현실의 아름다움 표현하고 싶어”

최근 작가는 폐가구 등을 모으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나름 아르누보 스타일을 지향해 만든 것 같은 디자인이 우리나라의 색과 섞여 독특한 디자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멀리서 보면 분명 서양식 분위기가 풍기는 벽지인데, 자세히 보면 안에 그려져 있는 꽃이 무궁화처럼 보인다던가, 화려한 효과를 위해 쓴 금색이 서양의 장식 미술에서 쓰인 것과 목적은 같지만 미묘한 색감 차이 때문에 너무도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곤 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현상이 우리 삶을 반영하는 또 다른 소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자신의 작업에 접목하고 싶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세상에 대한 애정만큼 큰 작업

조윤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다각도의 시선을 가진 듯 보였다. 그 모든 호기심과 감정들을 말로써, 작품으로써 열심히 표현하려는 것이 학생의 순수함을 간직한 동시에 학교라는 울타리를 갓 벗어나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신진 작가의 모습이다. 꽤 높은 층고의 작업실에서도 작업의 크기를 타협해야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작업 사이즈에 맞는 전시 공간을 찾는 일이 작업의 가장 큰 관건이라는 그녀는, 혹은 그녀의 작업은 그녀가 가진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큼 성숙하고 커질 예정인 듯하다. 

▲조윤원, ‘장미장식과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가변 설치, 침대 헤드, 함석 슬레이트판, 조화, 석고, 섬유, 나뭇가지, 철 및 혼합 재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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