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자연 손질해 정원 만든 인간, 이젠 멈춰라”
‘에덴공화국’전 &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전
▲조르디 지스페르트, ‘누스키토(Nuskito)’. 종이에 오일, 31 x 31cm, 2015. 사진 = 갤러리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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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자연이 있고 인간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엔 인간이 먼저 있고, 자연이 뒤로 밀린 모습이다. 기후변화, 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등으로 제2의 지구를 찾는 움직임도 바쁘다. 이 가운데 자연과의 공생, 자연의 중요성을 짚어보는 두 전시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인간 손 미치지 않은 원초적 자연
‘조르디 지스페르트 개인전 - 에덴공화국’
스페인 작가 조르디 지스페르트는 개인전 ‘에덴공화국’에서 이상적, 원초적인 자연으로의 회귀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예술 활동을 통한 환경 보호를 지향해 왔다. 그는 자연을 파괴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이상의 원초적 자연을 오일 페인팅으로 화폭에 담는다.
그의 캔버스엔 기하학적인 모습의 풀, 문자화된 나무와 구름, 드넓은 하늘이 주로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손이 가꾼 정원을 시각화한 것으로, 자연이 주는 마지막 기회를 뜻한다. 인공적인 자연 파괴에서 벗어나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것.
▲조르디 지스페르트, ‘쏘시에트리(Societree)’. 종이에 오일, 31 x 31cm, 2015. 사진 = 갤러리토스트
이 작업은 작가가 오랜 기간 예술적 신념으로 삼은 주제 ‘에코콘시엔시아(Econsciencia)’에서 시작됐다. 환경(ecologia), 과학(eiencia), 의식(conciencia)을 조합해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로, 자연을 과학적으로 안 뒤 원초적 자연 및 이상적 공간을 구현하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한국 전시에서 작가는 장소의 특이성을 부여해 새로운 에덴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작가가 바라본 한국은, ‘동양의 미지 세계’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이라는 정치적 접점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 중심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작가가 언급한 천혜의 원초적 자연에 부합하는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가 자리한다. 이 공간을 통해 작가가 예술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에덴(Eden)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조르디 지스페르트, ‘에스타도 에데니코(Estado Edenico)’. 종이에 오일, 31 x 31cm, 2015. 사진 = 갤러리토스트
이번 전시를 담당한 유혜영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인공 자연이 원초적 자연을 넘어 파괴 수준에 다다랐다. 공해, 자연재해, 이상기온 같은 현상들이 현재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로 매일 대두된다”며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생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시도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에서 작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동식물의 천국인 한반도 비무장 지대를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천혜의 공원이란 결론을 내린다. 그에게 있어 삶의 당면 과제는 원초적 자연을 되찾는 것”이라며 “작품을 통해 자연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이상향과 미래를 제시하며 소통하려는 점에 주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갤러리토스트에서 2월 17일까지.
동식물과 공생하는 자연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전
조르디 지스페르트가 원초적 자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면,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전은 예로부터 자연과의 공생을 중시하며 이를 담아온 한국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고려말에서 조선말까지 대표 화가들이 그린 자연 풍경을 전시한다.
▲정선, ‘과전전계’. 사진 =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림엔 고양이, 나비 등 익숙한 동물들과 그 동물들 곁에 항상 자리하는 꽃 등 자연 환경이 함께 노출된다.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 대척하기보다는 친숙하게 조화를 이루며 어울린다. 전시명처럼 자연을 품은 모습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아무것도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사임당(1504~1551)의 작품은 원추리꽃, 패랭이꽃, 개미취가 핀 꽃밭에 나비가 날아든다. 그림 아래에 조그만 도마뱀 한 마리가 소박한 느낌을 준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과전전계’(瓜田田鷄: 오이 밭의 참개구리)엔 오이 밭 풍경이 펼쳐진다. 패랭이꽃과 참개구리, 나비까지 함께 어울린다.
▲변상벽, ‘자웅작추’. 사진 = 간송미술문화재단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황묘농접’(黃猫弄蝶: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에선 옅은 주황빛 고양이가 풀밭 주변에서 나비와 장난치는 듯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전시는 윤두서, 강세황, 신윤복, 장승업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포함해 총 90여 점을 선보인다.
▲김홍도, ‘황묘농접’. 사진 =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 측은 “동식물은 인간과 공생하며 먹이사슬로 이어져 자연 환경을 이루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며 “이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현란한 색채와 몸짓으로 상대를 유혹하거나, 아름다운 꽃을 피워 곤충을 끌어들이니,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려는 그림의 소재로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성격이 강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여러 화과명(畵科名: 그림 분류 명칭)을 붙이면서 다양한 동식물 그림을 그려 왔다.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그림에 등장하는 자연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3월 27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