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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무브먼트 ①] 미술 안으로 들어온 첨단 ‘아트 팹 랩’

뭐든지 직접 만들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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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9-470호(설날) 윤하나 기자⁄ 2016.02.11 11:25:24

▲아트팹랩의 공간.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이케아(IKEA)의 조립 가구를 사와 집에서 직접 조립하는 것부터, 오픈소스로 공유되는 게임 엔진을 이용해 1인 게임 제작까지…. ‘직접 만드는 것’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인터넷과 조금의 돈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만들어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흐름에 기반을 둔 메이커 무브먼트(Maker Movement)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인터넷 정보를 활용해 30~40만 원 정도의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자가 3D 프린터를 제작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3D 프린터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는 와중에 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것은 과학자만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 및 창작자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만드는 이(Maker)라는 개념이 창작자의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오늘날 메이커 무브먼트는 디자인, 공예, 그리고 예술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이렇게 보편화된 DIY 문화에서 첨단 기술은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술계에서는 센서를 활용한 영상, 설치 작품(인터랙티브 아트) 또는 공학 원리를 이용한 움직이는 로봇(키네틱 아트) 등 디지털기술 활용예술을 ‘뉴미디어아트(New Media Art)’라고 부른다. 자신이 사는 현재에 대한 성찰을 현재의 기술로 표현해내는 작가들의 등장은 기술과 예술 양쪽에서 모두 주목받는다. 올라퍼 엘리아슨, 최우람, 율리어스 포프 등이 그 예다.

뉴미디어 미술의 도래

그리고 앞으로 신매체를 활용하려 하는 작가들은 더욱 많다. 이들에게 기술력에 대한 접근은 두려움일 수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도 등장했다. 단순한 제작 공방에서 벗어나, 제작자가 자유로이 모여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교류의 장이란 특징을 지녔다. 해외의 대표적인 예로 세계 각국에 위치한 500개 이상의 팹랩(Fab Lab)과 미국의 테크샵(Tech Shop), 구글의 미디어랩(Media Lab) 등이 있다. 실제 공간뿐 아니라 메이커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메이커 페어(Maker Faire), 인스트럭터블스(Instructables), 메이크진(Makezine) 등이 그 예다. 그렇다면 한국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어떨까? 

한국의 메이커 스페이스와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제작 인프라를 이번 시리즈부터 소개한다. 처음 소개할 곳은 국내 유일의 미술관 내 메이커 스페이스, 아트팹랩이다.


①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팹랩 
예술+기술=상상력이 실제 되는 창의공방

아트팹랩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 창의성과 상상력이 실제가 되는 창의공방으로, 2015년 한국현대미술관 서울관 교육동에서 문을 열었다. 다양한 3D 프린터와 3D 스캐너, 레이저 커터, 밀링머신 등 디지털 공작기기를 갖췄다.

▲아티스트를 위한 팹랩에서 오후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윤하나 기자

개관 이래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교육 워크숍과 대학 연계 프로그램(2DX3D)을 진행하며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예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의 참여를 도모하는 데 있어 예술인을 위한 집중적 지원은 아직 미진하지만, 추후 이뤄나갈 계획이다. 미술관 측은 “장기적 안목으로 미술관 인프라가 가진 장점과 연계 기관이 많은 무한 상상실로서의 장점을 결합해 다양한 협업 관계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12대의 3D 프린터를 포함한 기계 20대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1월 29일 열린 ‘아티스트를 위한 팹랩 워크숍’에 참여해 강연에 나선 뉴미디어 작가들과 아트팹랩 담당자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정은주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담당 “캐릭터-가구 디자이너부터 미대생까지”

- 아트팹랩의 현황은?

“일주일 평균 30여 명이 이용 중이다. 대개 시제품을 제작하는 디자이너들이다. 캐릭터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또는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작품 제작을 위해 이용한다.”

- 아트팹랩에 현업 작가들의 참여는 어떻게 이뤄지나?

“설립 초기라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 중이다. 현재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강사 대부분은 공간 디자인이나 가구, 제품 디자이너 등 전문 창작자들로 구성됐다. 뉴미디어 작가들도 강연에 참여한다.”

- 아트팹랩이 추구하는 미래는?

“아트팹랩은 미술관 내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메이커 스페이스다. 예술인, 청년 창작 커뮤니티 등이 메이커 집단 및 다른 무한상상실과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중간 허브가 되고자 한다. 아트 인 랩(Art in Lab)이라는 이름 아래 현재 여러 뉴미디어 작가들과 앞으로의 운영방향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미디어 아티스트가 만난 메이커 무브먼트

양원빈 작가는 기술이 인간 사회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여러 현상을 철학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로보틱스(로봇공학)와 인공지능 등 사회적 로봇 윤리에 대해 고민하며, 미래 사회에서 생명의 의미가 무엇일지 탐구한다. 도시의 산물인 쓰레기를 재료로 로봇을 만들고 그것들이 실제 도시 환경에서 작동하는 광경을 기록한다.

김항진 작가는 3D 모델링, 스캐닝, 프린팅은 물론 아날로그 조각까지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를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 폐물의 분해된 부속품들로 구상적 형태를 다루고, 형태 없이 잠재적이었던 형상들이 작품으로 형성화되는 과정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부여하는 예술가다.


[인터뷰] 양원빈 “뉴미디어는 도구이자 주제”

- 작가로서 체감하는 메이커 무브먼트란?

“붓과 물감이 전통적 미술 도구(재료)라면, 기술·전자 장비 및 마이크로 컨트롤러(아두이노 등)가 새로운 미술 재료(도구)로 등장해 현재 보편화됐다.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아트 앤 테크놀로지 스터디스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회화, 조각, 건축 등 많은 타 전공과 학생들이 아트앤테크 수업에 참여하며 관심 보이는 걸 봤다. 어린이부터 일반 초심자까지 여러 대상을 위한 워크숍도 활발했다. 이미 2000년대부터 미국에서 메이커 페어 등이 성행했고 현재 한국도 그런 흐름을 타고 있다.” 

- 양원빈 작가에게 뉴미디어란?  

“내게 뉴미디어란 도구이자 매체고, 주제다. 우선 내가 만들고 싶고 상상하는 것을 실현시켜주는 도구다. 내 작업의 주제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이 만연한 미래의 기술 사회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인생과 삶에 관한 고찰이다.” 

▲양원빈, ‘엄브레인프라투스’. 2015.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 뉴미디어에 관심 갖는 작가가 주변에 있는지?

“내 작업을 보고 연락 준 분들도 계시고, 신매체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배우고자 하는 분들도 많다. 아트팹랩이 앞으로 그런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앞으로 아트팹랩을 어떻게 이용할 예정인가?

“이전까진 도시의 쓰레기를 재료로 작업했지만, 앞으로의 로봇 제작을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해볼 계획이다.”


[인터뷰] 김항진 “디지털 환경에서 예술에 접근”

- 아트팹랩에 바라는 점은?

“아트팹랩이 기술자와 예술가의 융합이 이뤄지는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 당장 메이크스페이스에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낼 순 없다. 기술자와 예술가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소통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일단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마음 편히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 그 이유는?

“예술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도움을 원하는 반면 현장의 테크니션(기술자)은 예술에서 영감(창의성-상상력)을 받으면서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서로 대화와 협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이뤄진다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김항진, ‘디88045047’. 자연석, 83 x 68 x 55cm. 2013. 사진 제공 = 작가

-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해왔다. 간단히 설명해 달라.

“미국 피츠버그 자연사박물관에서 고생물학자와 엔지니어, 과학자와 공동 작업하며 공룡 화석을 토대로 그 당시 공룡의 모습을 추론해 구현하는 일을 했다. 예술가로서 참여한 협업을 통해 연구자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배운 점이 많았다. 디지털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이후 3D 모델링을 바탕으로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우연적 형태에 관해 작업했다.

현재는 화석과 질감이 비슷한 푸석돌(풍화 작용이 끝나 쉽게 부서지는 돌)을 이용해 현대 사회의 물건들을 미래 시점에서 바라보는 화석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후대의 어떤 존재가 우리 시대의 산물(예를 들어 가스통, 곰인형 등)을 발견한다면, 어떤 모습의 화석을 보게 될까 상상했다.”

- 미술 작가들의 아트팹랩 이용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기대하나?

“미술 작가들의 자생력 향상에 관심이 많다. 아날로그적 방식인 작가–화랑–콜렉터의 유통 구조에 다른 패러다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디지털 제작방식)을 통해 아트–기술–시장의 새로운 생태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예술가와 기업의 매칭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구상해본다. 장기적으로는 작가와 공학도, 철학가 등이 자유로이 모여 디지털 시대의 철학적 담론을 형성하는 한편, 예술가와 기술자의 오랜 소통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로를 잘 알고 협업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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