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중심 아닌 위·아래에서 바라보기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을 추구
▲이슬기, ‘tracking’. 스틸컷 이미지, 2016. 사진 = 탈영역 우정국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사람의 눈이 배꼽 혹은 엄지발가락쯤에 위치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 보일까? 눈높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다. 고층 아파트의 상층에서 자라난 아이와 단층집에서 자란 아이의 사고 체계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경제적·정치적 지위와는 별개로 시선의 물리적 높이가 인지·지각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시선의 높이는 일상에서 특히 민감하다. 저마다 자신에게 익숙한 시선의 높이가 있고,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된다. 건물의 지상층, 작업 책상의 높이 등을 기준으로 그 기준 자체, 혹은 기준 밖의 변방을 탐험하는 전시가 열렸다. 작가가 반지하 혹은 옥탑방 작업실 그리고 책상의 높이에 집중하는 것은 자신이 출발한 시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서 있는 물리적 위치를 재점검하며 그 한계 혹은 제약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경계를 탐험하는 일은 언제나 유의미하다.
책상의 규칙, 74cm의 위-아래
누크갤러리, 김도균-이은우 2인전 ‘74cm’
삼청동과 가회동 사이 언덕길에 위치한 누크갤러리에서 김도균-이은우 작가의 전시가 열렸다. 책상의 일반적 높이는 74cm라고 한다. 여기서 기능과 대상에 따라 더 높거나 낮아지기도 한다. 두 작가는 책상이라는 작업대를 ‘바닥에서 74cm 떨어진 수평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그 위-아래의 영역을 각자 나눠 가졌다. 그리고 이 임의적인 규칙에 따라 작업하고 전시를 기획했다.
▲이은우, ‘Blue Triangle and Black Rectangle(부분)’. 각각 38.3 x 20.5 x 38.3cm 3 피스, 파우더 코팅, 강철. 2016. 사진 = 누크갤러리
74cm보다 위의 영역은 김도균이 차지했다. 사진의 형식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그의 작업적 특징을 드러내는 모노톤 사진들이 1층 전시장 벽면을 나란히 채웠다. 모두 밑변을 맞춰 바닥으로부터 책상만큼 거리를 두고 걸었다. 1층의 사진들은 그가 이전에 전시했던 공간의 후미진 구석(주로 천장과 벽면이 만나는 곳)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면과 면이 만나 선이 나타나고, 그렇게 획득한 평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2층에 전시된 일련의 작업들은 출력 사진의 규격 사이즈를 적용해 같은 이미지를 각각의 크기로 출력했다. 5x7, 8x10, 11x14, 16x20, 20x24의 규격 출력물은 곧 사진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이은우, ‘Red Stripes’. 180 x 66 x 88cm, 우레탄 페인트, 강철. 2016. 사진 = 누크갤러리
반면 이은우는 전시장 바닥 곳곳에 74cm보다 키가 작은 조각 작품을 놓았다. 이은우는 자신의 작품을 ‘물건’이라 부르며 거리 두기를 하는 작가다. 개념적, 실용적 접근을 차단하고 관습적 형태와 추상적 레퍼런스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록 원, 파란 직사각형, 빨간 사각형 등 직관적인 색과 기하학적 도형을 제작하거나, 정해진 수치대로 자른 나무에 다시 규칙을 부여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두 작가 모두 74cm라는 한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 범위 내에서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 자신을 제약한다. 창작은 자유로부터 파생하기보다 주어진 제약을 파악하고 경계와 레퍼런스를 발견해나가면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전시는 3월 16일까지.
옥탑방과 반지하의 동지들
탈영역 우정국, ‘수평이동’전
마포구 창전동의 구 우체국 옥상에 위치한 탈영역 우정국에서는 ‘수평이동’전이 진행 중이다. 남민지, 이슬기, 임유정, 허연화 작가 4인이 참여한다. 이들은 건물의 수직적 양단(위-아래)에 위치한 자신들의 좌표를 탐험한다. 누크 갤러리의 전시가 기준점 위치를 바닥에서 74cm 높이에 뒀다면, 이 전시는 반지하와 옥상이라는 변방에서 출발한 작업을 바라본다.
▲임유정, ‘p의 이야기’. 스틸컷 이미지, 2016. 사진 = 탈영역 우정국
상수역 인근에서 각자 작업실을 구하던 작가 4인은 모두 반지하와 옥상 자리를 얻었다. 반지하와 옥상은 건물의 수직 방향 양 끝에 위치한 가장자리다. 그렇기에 작가들의 작업 결과물은 반지하와 옥상 생활에 적응된 습관과 행동을 드러내기도 한다.
옥탑방 작업실은 이슬기와 남민지, 그리고 반지하 작업실은 임유정과 허연화가 차지했다. 작가들의 작업은 탈영역 우정국의 전시실 4개 방에 각각 자리 잡았다. 우정국에 들어서기 전 왼쪽 창문을 통해 남민지의 회전하는 거대한 구체가 눈에 띈다. 방의 중심에 자전하는 구심체를 위치시키고 그 외 공간에 4등분 벽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흰 벽과 그 틈에서 돌아가고 있는 구체의 4분의 1 쪽뿐이다.
▲허연화, 설치 전경. 사진 = 탈영역 우정국
입구를 지나면 허연화의 설치 작업과 디지털 프린트가 먼저 보인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인체와 다양한 굴절 이미지를 모델링한 디지털 프린트와, 이 프린트를 이용해 만든 설치물이 바닥에 비스듬히 서 있다. 이슬기는 허술한 기둥에 줄을 묶어 줄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방사형으로 의자를 놓았다. 의자에 앉지 못한 채 기둥을 돌며 줄을 당기는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임유정은 스카이콩콩 기구를 타고 점프하면서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는 영상 작업을 전시했다.
▲남민지, 설치 전경. 사진 = 탈영역 우정국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모두 작가들의 이전 작업과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전시에 참여한 이슬기 작가는 “수평이동이라는 기획 아래 각자 작업실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나 상념, 조건 등을 바탕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건물과 사회구조상 가장자리에 속하는 이런 위치적 특징을 바탕으로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의 기록을, 역시 옥탑 형태의 전시장(옛 우체국 옥상 위)에서 전시하는 모습이 유희적이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
윤하나 기자 heee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