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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고 천경자가 “내 자식 아냐”라고 한 ‘미인도’부터 친자확인소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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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2호 김연수 기자⁄ 2016.03.03 08:57:46

▲지난해 12월 11일 고 천경자 화백의 장녀 이혜선(오른쪽 첫번째)씨가 부산 부경대학교에서 천 화백의 작품과 소장품을 부경대에 기증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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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연수 기자) 지난 2월 22일 동아일보의 단독보도로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로 알려진 김정희 씨(미국 몽고메리대 교수)와 막내 고 김종우 씨의 부인이 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제출했음이 알려졌다. 위작 소동이 벌어졌던 ‘미인도’에 대해 천 화백이 생전에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는 없다”며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후, 자녀들의 친자확인소송까지 이어지면서 ‘미인도’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져가는 상황이다. 고 천 화백과 미인도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본다.   


천 화백은 생전 두 번의 결혼을 통해 4남매를 뒀다. 두 번째 남편인 고 김남중 전일그룹 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정희 씨와 종우 씨는 아버지의 호적에 포함됐다. 당시 김 회장은 다른 여성과 법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두 자녀는 천 화백과는 법적으로는 친족이 아닌 것으로 등록됐다. 김 남매가 천 화백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은, 화백 생전에 스스로 밝힌 증언들, 사진이나 화백이 남긴 글 등의 여러 증거가 있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친자 권리를 얻은 후 그들의 행보다.

김 남매 측은 법원으로부터 친자임을 확인 받으면, 정당한 자격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SBS 일요스페셜, 차녀 김정희의 입장을 대변

1991년 4월 불거진 ‘미인도’ 위작 논란은 국현이 주최한 ‘움직이는 미술관’에서 시작됐다.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개최된 이 전시에서 미인도가 처음 대중에 공개됐고, 그 그림이 들어간 달력과 포스터 등으로 수익사업도 전개됐다. 당시 포스터를 본 천 화백은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현은 화랑협회에 감정을 맡겨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국현은 논란이 된 그림의 공개와 재감정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A홀에서 전시관계자가 천경자 화백의 ‘바리처녀’ 작품을 보고 있다. 위 작품은 모작 논란을 일으킨 ‘미인도’의 참고 그림으로 지목된 작품이다. 사진 = 연합뉴스

한편, 작년 8월 천 화백의 타계 이후, 여론은 미술관이나 화랑협회의 입장보다 작가의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는 없다”는 발언, 끝내 풀어내지 못한 한 맺힌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김 남매의 친자 소송이 있기 5일 전인 2월 14일 방영된 ‘SBS스페셜, 소문과 거짓말 - 미인도 스캔들’ 편은 당시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내린 화랑협회의 감정위원단이 제시한 근거, 그리고 최근 국현이 진품의 근거로 제시한 자료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차녀 김정희 부부의 이야기를 내보냈다.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미인도 위작 논란의 전개 및 국현과 화랑협회 vs. 천 화백 유족의 입장 차이를 한 눈에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해봤다.

SBS스페셜은 이런 양측 간의 정반대 주장 외에도, 미인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의 재산 압류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사실, 그 유통 경로의 추적 과정, 그리고 자신이 위작을 만든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권춘식의 증언과 재현 과정 등을 내보냈다. 이날 방송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했던 부분은 논란의 출발점이 됐던 ‘움직이는 미술관’전이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기획 아래 이뤄졌으며, 윗선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의 태도였다. 천경자 화백의 지인인 김성환 화백이 들었다는 “너희가 진짜라고 했으니까 진짜라는 증거를 대지 않으면 7명의 목을 치겠다”는 얘기는 당시 문화부에서 화랑협회에 가해진 압박을 짐작케 한다.

어머니의 한을 위로하고픈 자녀들의 다른 행보

천 화백은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눈을 감을 때까지 맏딸 이혜선(섬유미술가) 씨와 지냈다. 이혜선 씨는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사후 두 달 뒤에야 밝히고, 다른 형제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아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화가 자신이 그리지 않았다고 밝힌 사안이고, 괜히 논란이 커져봐야, 대중들에게 위작의 이미지만 더 각인된다는 이유였다.

▲미인도와 가장 흡사한 형태의 1981년 작 ‘장미와 여인’.

이혜선 씨의 입장은 이렇지만 다른 형제들, 즉 이혜선 씨의 형제 이남훈 씨,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김혜선 씨와 고 김종우 씨의 아내 등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두 어머니 천 화백이 생전에 떨쳐내지 못한 한에서 비롯됐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움직임은 언론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듯하다. 김 남매 측이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이번 소송은 “유산(유작)과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목적”임을 강조하고 있고, 기자 회견에서도 이혜선 씨가 가장 희생적인 딸이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혜선 씨 또한 어머니의 드로잉과 미완성 작품 1000여 점과 개인 소장품 3000여 점 등 모두 4000여 점을 부경대에 기증함으로서 유산(유작) 논란은 일단락되나 싶었다. 그러나 몇몇 언론들은 자녀들 간의 유작을 둘러싼 법적 다툼을 미리 관측하고, 화백의 사후 치솟고 있는 유작 가격을 연일 보도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천 화백의 생전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창조의 과정을 출산에 비유하는 예술가들의 말은 결코 꾸민 것이 아니다. 작품을 자식처럼 여겼다는 천 화백의 태도 또한 천 화백만이 아니라 진정성을 작품에 담고자 하는 예술가의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다. 자신이 낳지도 않은 자식을 자식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정신착란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하는 자녀들이 있다. 그 가운데 이런 고통의 결과물들을 숫자로, 형제들 간의 상속 분쟁 등의 흥밋거리로 만들려는 시도들이 씁쓸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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