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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 이슈] ‘진흑(真黑)’의 1인독점과 흑女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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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3호 김연수 기자⁄ 2016.03.10 08:58:33

▲아모리 쇼의 전시장. 사진 = 아모리 쇼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차가운 칼바람이 멈추고 봄내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3월을 맞아 여러 화랑들과 미술관이 전시 소식을 물밀 듯 내보내고 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미술계가 따뜻한 훈풍을 따라 기지개를 피는 듯하다. 국내와 세계 미술계에서 한 해의 본격적인 시작은 떠들썩한 아트페어와 함께 한다. 뉴욕은 연례행사인 아모리 쇼를 열었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수많은 뉴스를 양산 중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와 관련한 색 논쟁이 눈에 띈다.

아니쉬 카푸어와 ‘반타블랙(Vantablack)’ 논쟁

2014년 7월, 영국의 서리나노 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는 ‘반타블랙’이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물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검은색 중에서도 가장 검은색인 이 물질은 기본적으로 모든 빛(99.965%의 방사선)을 흡수한다고 강조했다. 반타블랙의 검은색은 너무 검어, 알루미늄처럼 반짝거림이 심한 재료의 표면을 덮으면 그 표면의 굴곡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블랙홀과 비견되는 심연의 색을 만들어냈다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반타 블랙’의 검정색은 너무 검어서 정면에서 볼 경우, 입체감을 주지 않는다. 사진 = 서리 나노시스템즈

하지만, 이제 적어도 예술 분야에서 이 검정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인도 출신의 영국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반타블랙에 대한 독점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카푸어는 동양과 서양의 정체성을 모두 지니고, 그 경계에서 간극을 연결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대부분 작업은 정신-물질 같은 상대적 요소가 공존함을 표현하는 입체조형이다, 사물의 물성을 이용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을 통한 인식을 의심하게 하는 작업의 특성으로 봤을 때, 반타블랙이 가진 기능에 그가 충분히 집착할만해 보인다. 

▲아니쉬 카푸어, ‘노랑(Yellow)’. 유리섬유와 노랑 안료, 600 x 600 x 300cm. 1999. 사진 = 리쏭갤러리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영국 여왕을 그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젊은 작가 크리스티안 퍼(Christian Furr)는 작품에 반타 블랙을 사용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덜 검은 색을 사용하도록 제한된 것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재료를 독점한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며, “터너, 마네, 고야 같은 작가들도 순수한 검은색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 현재 예술계에서 이 검은색은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권한이 한 사람에게만 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어찌됐든 카푸어에게 독점권을 준 서리나노 시스템즈는 카푸어의 열렬한 팬임은 분명해 보인다. 회사의 창립자이자 최고 기술 책임자인 벤 젠슨(Ben Jensen)은 2014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카푸어에 대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며, “우리가 그런 일에 관련될 것이라고 상상해본 일을 없지만 그의 생각은 전염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 연구원들은 이런 방식(예술 작품에 사용되는 것)으로 그들의 연구 결과가 사용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리 나노시스템즈가 개발한 ‘반타 블랙’. 사진 = 서리 나노시스템즈

한편, 독점권이 아니더라도 색에 대한 특허권을 가진 예술가는 이브 클라인(Yves Klein, 1928~1962)이 있다. 누보 레알리즘의 선구자이자 단색 회화로도 유명한 클라인은 1960년 자신이 사용한 푸른색에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IKB)’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다.  

뉴욕, 최대 국제 아트페어 ‘아모리 쇼’개최

세계적으로 가장 큰 미술 시장이라면 단연코 뉴욕이다. 이곳에서 3월 3~6일 아모리 쇼가 개최됐다. 

이 행사는,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전으로서 뉴욕 렉시턴가 26블록에 소재한 69연대의 무기고(armory)를 전시장으로 사용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원래의 명칭은 국제 현대미술 박람회(The 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Art)로, 처음 개최 당시 유럽에 뒤처진 미국 미술 시장에 활기를 촉발시킨 기여를 인정받았다. 

▲아모리 쇼의 전시장에서 관객이 작품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 = 아모리 쇼

1994년 아트페어로 변신한 아모리 쇼는 매년 허드슨강에 인접한 Pier(부두) 92와 94(부두에 컨벤션 센터가 있다)에서 근·현대 미술(Mordern Art)과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로 나눠 개최된다. 올해 22회를 맞은 행사에는 세계 200여 곳의 상업 갤러리들이 작품을 내놨다. 한국에서는 모던 아트 분야에 가나아트가, 컨템포러리 분야엔 국제 갤러리가 참여했다.

아모리 쇼가 열리는 주에는 크고 작은 다른 페어 및 전시회들까지 동시에 열려, ‘아모리 미술 주간(Armory Art Week)’이라 불린다. 아모리 쇼보다 규모는 작지만 못지않게 주목받는 행사로 미국 아트딜러협회(ADAA, Art Dealers Association of America)의 아트쇼가 있다. 파크 애비뉴 아모리(Park Avenue Amory)에서 고가의 유명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2008년부터 스위스 바젤에 이어 시작된 볼타 뉴욕 쇼(Volta New York)는 아모리 쇼의 자매격인 페어다. 출품 작가의 연령이 좀 더 어리고, 장르의 범위가 더 넓다는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각기 다른 성격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 펄스(Pulse), 스코프(Scope), 아트 온 페이퍼(Art on Paper) 등이 아모리 쇼와 같은 기간에 개최됐다.

아모리 쇼 주최측은 “이번 행사는 시각 예술 분야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목소리들에 초점을 맞추며, 양질의 모던 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의 작품을 고루 조합해 선보이려 했다”고 밝혔다.

아모리 쇼의 ‘흑인과 여성에 관한 주제’에 검열 논란

한편, 아모리 쇼는 매년 초청 전시로 열리는 별도 섹션으로서 아모리 포커스(Armory Focus)를 개최해왔다. 피어 94에서 개최된 올해 초청 전시는 ‘포커스: 아프리카적 관점(African Perspective)’이라는 제목으로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동시대 미술을 중점적으로 선보였다. 

전시의 프리뷰 날인 3월 2일 미국의 미술 관련 매체 아트 뉴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작가 에드 영(Ed Young)이 아모리 쇼를 위해 만든 작품 중 하나가 큐레이터들의 검열에 의해 거부당했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논란이 된 작업은 ‘BLACK PUSSY(검은 음부)’라는 굵은 핑크색 글자가 있는 거대한 보드다. 원래 전시장 입구에 걸린 ‘ALL SO FUCKING AFRICAN(모두 아주 빌어먹을 아프리카인)’이라는 글자가 있는 보드의 맞은편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작가와 작가가 소속된 SMAC 갤러리 대표는 아모리 쇼의 프리뷰에서 항의의 표시로 전단지를 뿌렸다. 전단지엔 비평가 르완다일 피커니(Lwandile Fikeni)의 아티스트에 관한 에세이와 함께 작품의 이미지가 실렸다. 

▲에드 영, ‘너는 잘못하고 있다(You’re Doing It Wrong)’. 캔버스에 아크릴, 250 x 170cm. 2015. 사진 = SMAC갤러리

피커니는 전단을 통해, “에드 영이 작품 ‘BLACK PUSSY’와 함께 본질적으로 암시하려 했던 것은 ‘예술 세계는 문화 생산자로서, 예술의 주제로서 흑인을 싫어하며, 오직 소비의 목적으로서만 연결 지으려 한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영의 작업이 빈민가 같은 공간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라며, 영의 말을 인용했다.

“유복한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BLACK PUSSY)을 찾고 있는…, 큐레이터에게 거부당한 이유 중 하나를 유추하자면, 그것의 ‘상스러움’ 때문이다. ‘상스러움’은 언어로서 표현될 때, 예술 안에서 ‘자동적으로 이국화(auto-exoticisation)’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흑인’과 성관계 맺기를 의미한다.”

이 전시의 공동 기획자 중 한 사람인 이벳 무툼바(Yvette Mutumba)는 이런 작가의 주장에 대해 “그것은 검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며, “우리는 작가들과 작가들이 가져 온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갤러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드 영은 아직까지 주최 측으로부터 재고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한 마디 한다. “뭐… 큐레이터들이 흑인과 여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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