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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류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라리오갤러리서울, 류인의 후기 미공개 유작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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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4호 김금영 기자⁄ 2016.05.13 11:47:58

▲류인의 작명 미상의 작품.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미완성 유작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직접 작품을 보기 전 자료 이미지로 먼저 접한 류인(1956~1999)의 작품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몸 한가운데 나무가 관통한 듯한 인물의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지만, 하반신으로 내려갈수록 나무의 모양새다. 인간인지 나무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묘하면서도 강렬했다. 전시장을 방문해 직접 본 작품은 더욱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감이 불편하기보다는 편안했다. 벽에 적혀 있는 작업노트가 눈길을 끌었다.


“나에게 흙은 곧 작업의 시작이자 끝을 의미한다.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 그 표현방식의 긴 여행은 흙으로 시작해 다시 흙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바로 이 흙은 나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해주고 현실 속의 한 형태로 빚어져, 돌아오는 진한 감동까지 맛보게 해준다.”


이 작품은 미완성 유작으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유작전 ‘경계와 사이’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류인의 부인 이인혜 씨는 “류인이 생전 1997~1998년 병으로 힘들게 작업을 했다. 지하실에 이 작업을 매달아 놓고 흙과 나무 등을 작업실에 갖다 놓고 끝까지 작업을 하다가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현재 이 작품 아래에는 흙이 깔려 있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 태초에 존재했던 흙으로 돌아가는, 즉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모습이다.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닐까 추측되는 인물의 얼굴은 그래서인지 평화로워 보인다. 앞서 느낀 압도감이 편안하게 다가왔던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것일까.


▲류인의 또 다른 미공개작인 '입산'. 기존 '입산' 시리즈와 달리 두 팔이 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사인Ⅰ'이 전시장 2층 메인에 자리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작업은 지하 1층 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1층에는 미공개작 ‘입산’이 있다. 기존 공개됐던 ‘입산’ 시리즈에서 어딘가를 오르려는 것 같은 팔의 역동적인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두 팔이 잘린 채 한 기둥에 앉아 멀리 높은 곳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팔이 없어 무력해 보일 법도 하지만, 오히려 고통스럽기보다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다.


2층 메인에는 미공개작 ‘사인Ⅰ’이 자리를 지킨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혹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인물의 모습. 앞과 옆에서 보면 계속해서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바로 생전의 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살해동기’도 2층에 함께 전시됐다.


이밖에 이등변 삼각형 형태의 두 다리 사이에 찢어 발린 나무, 그리고 가슴에 총을 맞은 것처럼 뚫린 가마솥을 상반신으로 한 ‘황색해류Ⅱ’, 머리에 세숫대야를 쓰고 저 높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 ‘하산’ 등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류인의 '하산'. 머리에 세숫대야를 쓴 인물이 하늘을 향해 손을 올리는 모습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아라리오 갤러리 측은 “작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황색음 - 묻혔던 숲’ ‘부활 - 조용한 새벽’ 등을 통해 시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급행열차 - 시대의 변’은 한국의 현대에 고뇌하는 인간군상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이후 작가의 후기 작업들에서는 주제나 표현적 측면 뿐 아니라 매체적 측면에서도 전작들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인체에 대한 더욱 다양한 오브제들이 더해지면서, 흙을 모태로 두되 그 경계에서 철근, 돌, 시멘트, 하수구 뚜껑 등을 동원해 확장된 장으로서의 조각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그 사유를 담은 마지막 일련의 형상들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밝혔다.


‘경계와 사이’전은 미공개 유작을 중심으로 류인의 후기 작업을 선보이는 자리다. 한국 조각가들에게 우상적인 존재로 꼽히는 류인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되, 형상을 분절하거나 왜곡하는 등의 해체와 표현주의적 재구성을 거듭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파란Ⅰ(1984)’부터 80년대 후반의 ‘지각의 주(1987)’ ‘윤의 변(1989)’ ‘입산Ⅲ(1987)’ 등의 작품들은 왜곡된 인체와 그 인체에 덧댄 입방체(정육면체) 형상의 장벽들을 깨는 행위가 돋보인다. 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틀과 사회로부터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인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류인, '황색해류Ⅱ'. 흙을 모태로 두되 확장된 장으로서의 조각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의 노력이 느껴진다.(사진=김금영 기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저항적인 상징으로서의 그보다는 삶과 죽음 사이, 그리고 매체적 측면에서는 흙이라는 전통적 매체의 경계에서 그 범주를 조금씩 확장해갔던 경계적 인물로서의 류인에 접근한다. 세상을 떠난 그에게 “이 작품의 의도가 이렇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 흙은 곧 자유이자 삶의 돌파구가 된다”고 생전 고백했던 작업노트 등을 통해 그의 의중을 따라가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 전시에서 지하 1층의 미공개 유작을 메인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그 부분이 느껴진다.


생전 그는 결핵과 통풍, 관절염과 간경화, 그리고 정신퇴행까지 각종 지병으로 평탄한 삶을 누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떠나던 날에는 나이 43세에 45kg의 왜소한 몸이었다. 하지만 조각의 모태인 흙을 따라, 조각가로서의 천성을 수행하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 작업들을 통해 그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평온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작품으로 끊임없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전시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6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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