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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공모 당선작가 ⑧ 치키홍] '치키호돌이' 화내고 '치유치유' 치료하고

두 캐릭터를 통해 그려내는 '삶의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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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5호 김금영 기자⁄ 2016.05.27 15:19:01

▲치키홍, ‘컴포팅 띵스(Comforting Things)', 캔버스에 라텍스 잉크 프린트, 130 x 90cm. 2015.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네가 던진 포크는 혜성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가슴에 박힌 그것을 잡지도 뽑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버렸다.”


근작 ‘식탁 위의 우주’와 관련한 치키홍의 짧은 글이다. 화면을 살펴보니 넓게 펼쳐진 식탁 위 공간을 돌아다니는 캐릭터가 보인다. 작가는 매 작업을 할 때마다 작업과 관련된 짧은 글을 쓴다. 그가 그리는 이미지와 관련해 펼쳐지는 짧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동화를 풀어내는 게 아니다. 숨겨진 이면을 꼬집는 ‘잔혹 동화’에 가깝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등장인물부터 살펴야겠다.


그의 작업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 치키호돌이는 ‘건방진’을 뜻하는 ‘치키(cheeky)’와 호돌이의 합성어다. 초창기 작업 때 많이 등장한 캐릭터로, 작가의 예명인 치키홍(cheeky와 작가 본명 중 한 글자의 합성어)과도 연결된다. 88년 대한민국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치유치유가 등장했다. 도심가 골목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양이 인형이 바로 작가에게 영감을 준 모티브다. 온몸에 오물이 묻고 군데군데 터져서 멍하니 작가를 바라보던 인형. 그 눈망울이 치유치유에 담겼다. 이 두 캐릭터는 바로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다. 명함에도 앞뒤로 두 캐릭터가 자리를 지킨다.


▲치키홍, ‘식사를 합시다 - 버섯스프탕’. 캔버스에 라텍스 잉크 프린트, 130 x 90cm. 2015.

외형적으로 두 캐릭터는 차이를 보인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모습이다. 치키호돌이는 눈매가 날카롭다. 털은 위로 삐쭉삐쭉 서 있고, 얼굴과 온몸이 화가 난 듯 빨갛다. 표정도 ‘썩소(썩은 미소로 비웃는 듯한 모습)’가 가득하다. 그리고 화가 난 가운데 당당한 모습이다. 캐릭터 자체로는 귀엽지만 치키호돌이는 해골을 끌어안고 있는가 하면, 목이 잘린 사람의 이미지 앞에서도 썩소를 잃지 않는 등 섬뜩한 풍경을 재현한다.


치유치유는 정반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순진무구한 표정,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질 듯 티 없이 맑은 눈망울. 꼭 안아 주고 싶은 느낌이다. 치키호돌이가 “나 기분 나빠. 그래서 어쩔 건데?” 하면 치유치유가 “워워~조금 진정해봐” 하고 이야기할 것 같다. 작가는 낮엔 치유치유, 밤엔 치키호돌이가 되는 걸까?


“두 캐릭터 모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게 됐어요. 먼저 만난 건 치키호돌이예요. 디자인 전공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회가 많이 있었어요. 코리아웹 콘테스트 등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좋은 조건에 취업 제의도 받았죠. 그런데 기업에 들어가서 부속품처럼 쓰이다가, 다음 세대들이 치고 올라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사춘기였던 것 같아요. 넓은 세상 속 제가 정확히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한 나무가 된 것 같은, 소외된 느낌이었죠. 그땐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세상과의 소통의 길을 밝힌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


▲치키홍, ‘세이브 샤크 프롬 데미언 허스트(Save Shark from Damien Hirst)’.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라미나, 80 x 56.5cm. 2009.

정확히 정해진 포맷에 맞춰 살다가 만끽하게 된 자유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작가는 “나는 스스로 찾는 힘이 약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다보니 타인과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점점 속으로 되뇌는 말이 많아졌다. 그 말을 세상에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가 치키호돌이다. 88년 어린 시절 작가가 본 호돌이는 완벽한 캐릭터였다. 방황의 시절, 가슴에 강하게 인식됐던 그 캐릭터가 다시금 떠올랐다고.


“방황하던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게 아니라,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저만의 창조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물, 즉 콘텐츠 없는 디자인 그릇만 만들다 끝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때 제 분노를 담아준 대상이 치키호돌이였어요. 제 자신이 스스로 손을 내밀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치키호돌이를 통해서는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죠. 원래는 작가를 꿈꾼 게 아니었는데, ‘이 길을 걸어야지’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정해진 포맷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치키호돌이를 통해 많이 해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분노만 표출한다고 모든 게 해소되는 건 아니다. 분노 표출 뒤에는 가슴 속에 자그마한 상처가 남기 마련. 아무리 강한 척 해도, 상처가 손톱만큼 작을지라도 아프기 마련이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로 치유치유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다가 쓸모가 없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진 인형의 모습이 꼭 우리네의 모습 같았던 것. 치유치유를 그리면서 감정 이입이 돼 울기도 했다.


▲치키홍, ‘달빛 신사’. 캔버스에 라텍스 잉크 프린트, 60 x 70cm. 2015.

그런데 그 과정에서 치유 받는 걸 느꼈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치유치유는 점점 자신의 우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그렸고, 거기를 치유치유가 신나게 누빈다. 그곳에서는 상처받지 않고 희망이 가득할 것 같다. 작가는 “처음엔 치키호돌이의 연장선상에 캐릭터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치유치유를 만들었어요.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캐릭터 작업을 하다보면 캐릭터가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어요. 치키호돌이가 화만 가득해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죠. 그래서 다른 존재의 필요성을 느꼈어요”라고 치유치유의 등장 계기를 밝혔다.


“치유치유도 초창기엔 냉소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예컨대 나는 너무 마음이 우울한데, 날씨는 화창하고 주변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더 비참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화면을 더욱 알록달록 꾸미고, 캐릭터도 더욱 귀엽게 그렸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화를 내며 혼자 있던 치키호돌이에게 치유치유라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았어요. 캐릭터끼리 소통하면서 저도 세상과 점점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현재의 치키호돌이, 그리고 치유치유는 과거와 비교해 어느 정도 밝아진 느낌이다. 작가는 “남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이들의 표정 변화가 느껴져요. 눈, 코, 입 사이 간격이 조금씩 달라질수록 표정이 달라지거든요. 지금은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하며 웃었다. 작가가 성장함에 따라 캐릭터도 함께 변화를 거치고 있다. 치키호돌이, 치유치유 이외에 새로운 친구를 또 등장시킬 계획이다. 나중에는 ‘치키홍 군단’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잔혹동화에서 점차 바뀌어 가는 세상


▲치키홍, ‘제트 이펙트(Jet Effect)’.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라미나, 100 x 80cm. 2012.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작가에게 이처럼 행복을 가져다 줬지만 주위의 시선이 차가울 때도 있었다. 장르에 대한 선호도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려 캔버스에 프린트한 작업을 작품이라 쳐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국내 미술계가 붓으로 그린 그림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체감했다. 그때 조언을 구한 사람이 권기수 작가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자 롤모델이에요. 동양화 풍경 소스에 동구리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어우르는 작업이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어요. 작가로서 길을 걷고 싶은데, 전시는 어떻게 열어야 할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대뜸 이메일을 보냈죠. 그런데 제 작업을 보고 재능이 있다고, 열심히 해보라고 조언해줬고, 구체적으로 미술 관련 사이트 및 공모전에 관한 내용도 담아 답장을 주셨어요. 정말 감동받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치키홍은 자신을 소개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저는 치키홍 작가입니다”이다. 그의 작업을 보고 "팝아트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이에 관해선 "사전에 틀을 긋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포부가 단단히 서 있다. 그래서 장르 구분보다는 블로그에 작업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다.


▲치키홍, ‘튤립 입양하기’. 캔버스에 라텍스 잉크 프린트, 70 x 50cm. 2015.

“제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제가 느낀 이 치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거예요. 처음엔 제 자화상으로 시작된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였지만,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치유치유의 유는 '당신(you)'을 뜻하기도 해요. 치키호돌이를 통해 화도 실컷 내보고, 치유치유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면서 해소하는 과정을 함께 갖고 싶어요. 작업도 더 다양화하고 싶어요. 입체 작업도 해보고 싶고,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도 펴내고 싶어요.”


작가는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에게 하고 싶은 말로 “열심히 해라”를 꼽았다. 이는 작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작업을 할 때 그 캐릭터가 실존하려면 계속 노력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해요. 이 둘도 그렇죠.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제가 더 노력해야죠.”


작가가 그간 그려온 치키호돌이와 치유치유의 이야기는 상처가 가득한 잔혹동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서로 소통하면서 이 잔혹동화의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중엔 정말 행복과 희망이 가득한 동화로 바뀔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치키홍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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