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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샤페즈 전]어둠 속 공명하며 새모습 찾는 영화-조각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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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김연수⁄ 2016.07.01 18:54:49

▲후이 샤페즈가 2층에 설치된 작품 ‘너의 손들’(강철, 가변크기, 1998)을 설치하는 모습. (사진=일민 미술관)


광화문의 일민 미술관은 포르투갈 출신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와 조각가 후이 샤페즈(Pui Chafes)의 2인전 ‘멀리 있는 방’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코스타의 영상 작품과 샤페즈의 조각 작품 40여점을 보여준다.


페드로 코스타는 주로 리스본의 이민자, 노동자 등 인간의 절망적인 모습과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다수의 다큐멘터리 및 실험 영화를 제작해왔다. 후이 샤페즈는 강철을 주재료로 추상 조각을 선보여 왔다. 언뜻 생각하기에 현대 미술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의 전시는 기존의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경험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이들의 전시에는 조명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오로지 코스타의 편집된 영상의 빛과 소리가 샤페즈의 강철 조각에 부딪혀 공명하며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1층 전시장의 모습. (사진=나씽스튜디오)


1층: 소란스럽고. 달려가는


기자처럼 살짝 야맹증이 있는 사람은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입구에서 한참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적응이 너무 오래 걸리면 전시 안내 요원이 영상을 감상이 가능한 의자까지 손전등빛으로 안내해 준다. 입구 쪽부터 들어서 있는 벤치 형상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아니라 샤페즈의 강철 조각 작품들이다. 안 보인다고 작품 위에 앉아 전시 안내 요원이 ‘작품 위에 앉으면 안된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지 않게 하자.


어렵게 찾아들어간 1층의 전시장의 앞, 뒤 벽에는 코스타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전면의 영상은 화산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화산이 터져 나오는 내용의 편집된 영화 장면이, 뒷벽의 CRT 모니터는 엄마가 아기를 보는 장면과 노동자들의 소음을 장면 변화가 거의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벤치 형태의 샤페즈의 작품들은 전면의 영상을 향해 다소 일률적이지 않지만 한 방향으로 배치돼있다. 자세히 보면 조각 작품마다. 기다란 흉터 같은 상처의 형상이 있다. 


뒤쪽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의 징징거림과 소음 그리고 전면의 영상에 접근하기 위해 피해가야 하는 샤페즈의 작품들이 다소 산만하고, 절망스러운 감정들을 불러 일으켰다. 작가는 천진하게도 “상처 입은 동물들이 영상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표현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 가운데 깊게 가라앉고 있던 감정’이 작가의 의도와 꽤 어긋나는지는 않는 것 같다.


▲후이 샤페즈, ‘블랙아웃’. 176 x 68 x 84cm, 강철. 2014.


2층: 깊게 울리는 읊조림


2층 전시장에서도 역시 입구서부터 조각 작품들이 맞이한다. 이번에는 조각 작품들이 공중에 설치돼 있다. 입구에 조각을 비추는 희미한 조명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 수로 또 다시 암흑천지가 된다. 이 전시장 역시 앞뒤로 프로젝터 영상이 설치돼 있는데, 이 영상들은 각각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중의 한 남자는 어떤 소리를 읊조리고 있는데, 그 소리들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샤페즈의 조각에 부딪힌 듯,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영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들의 눈빛이다.


읊조리는 남자는 코스타의 페르소나로서 리스본에서 온 이민 노동자 석공 벤투라다. 그 중얼거림은 애환을 담은 독백이라고. 애환이나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에는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입체의 속성을 잃고 마치 2차원의 그림자로 비춰지는 조각의 이미지와 묘하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특히, 조각 작품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자’는 입구 쪽의 희미한 조명도 영상의 빛도 닿지 않는 지점에 위치하며 검은 빛의 3차원 형태가 완벽하게 2차원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감상이 거듭될수록 샤페즈 작품의 제목이 촌스러울 정도로 작품의 이미지와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작품은 형태는 추상적일지라도 제목은 완벽에 가깝게 하나의 느낌, 감정 혹은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상당한 무게의 강철 작품임에도 설치와 형태 구성에서 강철 고유의 무게감을 찾아볼 수 없게 만든 것도 샤페즈 작품 세계의 특징이다.


▲후이 샤페즈,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자’. 228 x 71 x 71cm, 강철. 2013.


3층:균형


샤페즈 작품 제목이 주는 힌트와 함께 막연히 부유하던 공감은, 그리고  이 둘의 작품 간의 연결고리는 마침내 3층 전시장에서 쉽게 이해되고 공감된다. 공중에 설치된 조각은 문을 열어 놓은 창가의 커튼 모습을 하고 있고, 역시 공중의 같은 높이에 설치된 암막에 보이는 영상 속 인물들의 무표정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더욱 시선을 가게 한다. 영상과 조각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바람 혹은 공기의 흐름은 마치 1층에서 3층까지 관람하며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을 한 번에 정리하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이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다섯 번째 전시다. 이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들이 기존의 작품을 가지고 서로의 작품과 어울리게끔 한 연출이다. 각자의 고유한 영역에서 이름 앞에 ‘거장’ 타이틀을 붙이고 활동해왔고, 이 전시를 위해 작품을 새로 제작한 것도 아니다.


그들 영역에서 구축해 온 작품에서 새로운 해석과 시선을 발견하고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술관의 1층부터 3층까지의 전시장은 그 협업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도 같다. 작품의 특징을 상대의 작업을 위해 포기하거나 모호하게 제시됐던 것이 1,2층의 작업이라면, 3층의 작업은 각각의 특징이 온전히 살아있으면서도 서로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작업들이었던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하려 한다면 정말 어려운 전시가 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 충분히 익숙해지고 작품들 간의 공명을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술관 측은 이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을 교차시키며 ‘기억’과 ‘시간의 흔적’의 구현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한다.


솔직히, 작가들이 기억과 시간이 흔적을 구현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 작가가 층마다 특정한 느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불 꺼진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협업을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은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듯하다. 다만 작품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시길. 전시는 8월 14일까지.


▲페드로 코스타, ‘불의 딸들’. 4채널비디오(loop). 2015_1.

▲페드로 코스타, ‘불의 딸들’. 4채널비디오(loop). 2015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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