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미디어 아트 ①] 미술이 과학 만나 낳은 2세는 진화 중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미디어 아트(media art)는 오늘날의 미술에서 꽤 자주 만나게 되는 장르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년에 한 번씩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가 열려 수준 높은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 9회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SeMA)는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NERIRI KIRURU HARARA)라는 제목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남서울생활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등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미술계 관계자들뿐 아니라 미술을 즐기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대표적인 특성은 과학 기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각종 전기 동력 장치, 조명, 영상, 컴퓨터 프로그램 등이 사용된 미술, 때로는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최첨단의 과학 기술이 결합된 미술을 보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관객들은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미디어 아트에서는 예술적인 아이디어나 영감 못지않게 과학적 아이디어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며, 예술가가 과학적인 지식이 많을수록 풍부한 형식 실험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많은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새로운 장비와 프로그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노력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엔지니어(engineer)나 테크니션(technician), 과학 연구소와 적극적으로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관객참여 유도하고, 작품이 사라진 뒤 느끼게도 하고
미디어 아트가 가진 또 다른 대표적 특징은 대중의 참여, 대중적인 확산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관람객과 작품이 주고받는 영향 속에서 작품이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이 작품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준 작품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다시 영향을 받는 것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디어 아트는 그 어떤 장르보다도 동시대적이다. 예술과 최첨단의 과학 기술이라는 서로 이질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절충주의와 융·복합, 각 영역의 고유한 매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탈 경계의 실현, 관객과의 상호 작용(interactive) 중시 등은 요즘 미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런 미디어 아트 전시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나게 될까? 우선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작품이 움직이는 예술을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 하며 그 기원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자전거 바퀴’(191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누보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을 대표하는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뉴욕 찬가(Homage to New York)’(1960)는 기계 동력 장치에 의해 움직이다가 스스로 파괴됨으로써 물질문명 시대의 공허와 허무주의를 풍자적으로 담아냈다. 물론 가상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나 자연의 바람을 동력으로 삼는 작품, 관람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움직이는 작품들도 키네틱 아트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공학적 원리-를 이용하게 되면서 관객들은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게 움직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변화와 에너지를 갖는 움직이는 형상들은 정지되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하며 강한 인상과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2011), metallic material, machinery, custom CPU borad, LED, 220 x 360 x 260cm. 사진제공 = 갤러리 현대
현재 키네틱 아트를 대표하는 미술가로는 단연 최우람을 들 수 있다.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 기계문명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촘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으로 인해 관객들은 그러한 기계 생명체들이 우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작가의 이름(uram)과 결합된 독특한 학명을 가진 –거대한 식물, 곤충, 혹은 동물들이 연상되는- 최우람의 생명체들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고 진화할 수 있는 존재로 자연과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의 언젠가 도래할 수도 있는 자연계의 모습 같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정교함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그의 움직이는 기계들은 철학적, 미학적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시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생명과 기계, 문명과 자연,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르는 세계의 역사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빛’이 독자적인 미술의 재료가 되다
한편 최우람을 비롯한 많은 키네틱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 빛은 중요한 요소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빛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 작품이 된다. 라이트 아트(light art)는 단어 그대로 빛과 빛의 효과를 이용한 미술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빛은 자연광의 단계를 넘어서는 과학 기술을 이용한 빛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미술에서 작품을 위한 조명으로 존재하던 빛 그 자체가 작품이 된 것은 빛에 대한 완벽하게 새로운 인식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댄 플래빈(Dan Flavin)은 우리에게 익숙한 형광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독특한 문구들을 담아내는 LED 전광판, 건축물의 외벽에 텍스트(text)를 영사하는 대규모 라이트 프로젝션(light projection)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라이트 아트는 레이저 아트(laser art), 홀로그래피 아트(holography art) 등으로 확장되며 그 종류와 규모가 다양해지고 있다. 단일한 하나의 장르로 다루어지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위한 설치에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키네틱 아트가 물질로서의 작품 못지않게 그것이 놓이는 공간이나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에너지와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처럼 라이트 아트도 빛을 발산하는 물질로서의 작품 자체보다 빛의 효과가 더욱 중요시되며 경우에 따라 그림자도 중요한 조형 요소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키네틱, 라이트 아트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조각이 놓이는 장소 혹은 관람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거리에 불과했던 전시 공간을 미술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다음 호에 계속)
(정리 = 최영태 기자)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