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 김연수·윤하나 CNB저널 기자) 지난 호 기사를 통해 9월 2일 개막한 2016 광주비엔날레의 주제 맥락과 특성을 살펴봤다. 이번 호 기사는 비엔날레의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주목한다.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하는 작가 3팀의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소개한다.
강서경: 과거에서 얻는 미래에 관한 지혜
4전시실의 한가운데서 적당 거리를 유지하며 펼쳐져 있는 조각과 프레임(네모난 틀), 회화 작업과 영상 등의 오브제들은 자칫 혼란스럽게만 보일 수도 있지만, 원통과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형태 덕분인지 정돈돼 보이는 동시에 천과 실, 파스텔 톤의 색 등과 묘하게 어우러져 또 한편으로는 차갑지만은 않은 그림을 만들어 낸다.
강서경의 설치 작업 ‘검은자리 꾀꼬리’는 1인 궁중무용인 ‘춘앵무’를 발전시킨 작업이다. 춘앵무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는 무용으로, 네모난 화문석 돗자리 위에서만 이뤄지는 매우 절제된 몸짓이다.
한편,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은 가사, 악보, 시 같은 고대의 텍스트에 꾸준한 흥미를 보이고 있는데, 그중 우리나라 전통 악보인 ‘정간보’는 그의 작업의 근간이 되는 주요 모티브 중 하나다. 정간보는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로 이뤄진다. 정간보의 네모와 춘앵무의 화문석의 네모는 정서경의 작업에서 철제 프레임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강서경은 고대의 텍스트로부터 예전엔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잊혔을지도 모를 지혜 혹은 답을 얻고자 한다. 그는 “고대의 텍스트와 언어를 해석-해독하다 보면 미래 언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정간보와 화문석의 정사각형은 현대인의 정신적-물리적인 최소한의 활동영역을 의미한다”고 전한다.
보는 시점에 따라 기호화된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업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입체와 평면,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등을 한 자리에 집적함으로써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 낸 쪼개진 개념들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메타헤이븐 - 끝나지 않을 꿈같은 가상현실
이들에게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듀오라는 수식어는 불충분하다. 메타헤이븐은 2007년 다니엘 반 데르 벨덴(Daniel van der Velden)과 빈카 크루크(Vinca Kruk)가 설립한 디자이너-예술가 집단이다. 2011년 위키리크스(wikileaks)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제작하는 등 미학과 정치의 융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메타헤이븐은 이번 전시를 위해 비엔날레 본전시장 전면의 벽화 '우는 어머니('정보의 하늘' 중 한 장면)'와 도록 및 블로그 디자인, 그리고 웹사이트 www.informationskies.com을 통해 공개한 신작 온라인 영상 '정보의 하늘'을 제작했다. 이들의 작품은 전시장 바깥에서 2016 광주비엔날레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의 바다'는 가상현실(VR)에 관한 사이코드라마로, 전작 '확산 - 선전에 관한 선전(The Sprawl - Propaganda about Propaganda)'의 후기이자 후속작이다. 일종의 모험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가상현실이 만연한 잠재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내러티브는 체험과 현실에 대한 개인적 확신의 의심을 서서히 중첩하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강화될 여지가 있는 계급투쟁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영상 속에는 실재 인물의 실사 영상과 일본 망가 캐릭터 영상이 은하수 같이 아득한 가상현실 풍경 속에서 병치 된다. △"가상현실은 트라우마" △"기억하라. 이 영상은 오직 당신이 원할 때만 찾아온다" △"천장에서부터 사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니면 너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고 있던가'라고 그는 말했다" 등의 자막을 통해 현실과 괴리된 가상현실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이정민- 본질을 전달하는 헛기술
1관 전시장을 들어서면 보이는 전면 벽의 이정민 회화 작업은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산책-형태’ 연작을 포함한 9점이다. 수풀, 돌무더기, 벽돌 건물의 벽 등 사람의 형태 등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판단은 힘든 이미지들은 작년 이정민의 개인전 ‘헛기술’에서도 선보였던 것들이다.
이정민은 예술을 하는 방법을 ‘헛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실용적인 목적에 맞거나 효용성을 갖는다기 보다는, 기존의 관습이나 고정된 생각을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다. 그의 작업 노트는 '그런 기술과 같은 목적 없는 행위들은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라며, 이 헛기술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여전히 답 없는 시도를 지속하는 수행적인 태도를 동반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 제목이기도 한 ‘산책’이 의미하는 것은 작가의 서울에서의 도시 산책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위한 헛기술이 동반하는 수행적인 행위기도 하다. 내러티브를 짐작하기 힘든 작품 속 모호한 형상들은 다른 생각의 방식을 적용하는 과정 즉, 감각과 인식 그 자체에 대한 사색의 결과다.
이번 비엔날레의 감독 마리아 린드는 ‘예술감독의 글’에서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정민의 작업을 제시한다. 린드는 이정민의 작업 ‘산책-형태’를 "쉽게 해석되지 않는 것, 의미가 모호하고, 해석이나 코드화, 재현보다는 어떤 실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긍정으로서 바라본다"며, "외형보다는 본질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