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리 사이. 이 말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 너로 구분짓는 것이 아닌, ‘함께’를 지칭하는 우리 사이는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 말은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돌변하기도 한다. 우리(we)가 우리(cage)의 의미로 변할 때 우리는 ‘너와 내가 함께’가 아닌 ‘짐승을 가두는 곳’이 된다. 차가운 느낌이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오가는 이 중의적인 의미에 손지영 작가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에서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현재 활발히 작업 중인 ‘우리 사이’ 시리즈가 탄생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빼놓지 않고 계속 이어 온 일정이 있다. 사람들이 가기 쉬운 장소에 우리를 가장 많이 만들어놓은 동물원을 방문하는 것. 지금도 작업과 아르바이트로 바쁘긴 하지만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정이다. 원숭이 우리, 호랑이 우리, 표범 우리, 말 우리 등 동물원 안에 다양한 우리가 존재하고, 그 안에 수많은 동물이 있다. 작가는 우리 사이로 동물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우리 그리고 본능. “우리에서 파생된 첫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문을 열었다.
“동물원에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우리에 동물들이 살고 있어요. 우리는 동물들 본연의 삶을 축소하는 기능을 하죠. 우리 안에는 돌, 나무, 풀, 물웅덩이 등 조형적 배치도 돼 있어요. 동물들이 원래 살았던 환경과 비슷하게요. 하지만 아무리 정교할지라도 결국 그 또한 만들어지고 축소된 거죠. 저는 우리라는 틀 안에서 삶이 축소되고, 이에 따라 본능도 축소된 동물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어요. 최소한의 본능만 남은 동물들이 그 어설픈 조형적 공간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사람들은 동물 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를 만들고 그곳에 동물들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우리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변화를 겪고, 본능이 축소된다. 그리고 이런 우리 속 동물들의 삶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먹이를 주지 마시오’ 팻말이 무색하게 음식물이나 쓰레기를 우리 안으로 던지는 사람이 과거엔 특히 많았다. 보존을 위해 우리에 들어온 동물이 스트레스로 죽는 경우도 있었다. 본래의 보존 의미가 무색하게 삶이 축소당하고 침해받은 결과의 일부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은 동물원에서 사진을 찍는데, 옆의 한 커플이 막대사탕을 원숭이한테 던지더라고요. 놀라서 쳐다봤어요. 원숭이가 처음엔 신나서 받았다가 캑캑 대며 뱉었어요. 저는 그 순간이 아찔했는데, 원숭이의 그 모습을 보고 커플이 웃더라고요. 섬뜩했어요. 우리 사이로 삶을 침해받는 동시에 위협 또한 받는 동물들이 안타깝게 느껴진 순간이었어요. 좀 더 동물원 우리와 사람 사이에 존중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동물의 우리(cage)를 맞대고 존재하는 우리(we)
‘우리 사이’ 시리즈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하나는 동물과 사람의 사이를 칭하는 우리(we → people and animal) 사이, 그리고 동물이 실질적으로 갇힌 우리(cage)다. 먼저 동물들을 가둔 우리(cage)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슬프게 찍으려 의도적으로 연출하지는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다. 우리를 부여잡은 원숭이, 폭염에 몸을 웅크린 하마, 뒤돌아 있는 독수리까지…. 그리고 여기에 동물과 사람, 즉 우리(we) 사이에는 존중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우리 사이’ 시리즈의 주요 맥락이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동물원의 운영이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동물 쇼도 점차 축소되는 추세고, 삭막한 철장 대신 단단한 강화유리벽으로 우리를 만들며, 나중엔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식으로 최대한 본능을 지켜주려는 노력이다. 사람들 또한 동물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동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권과 더불어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시대다. 이런 우리(cage)와 우리(we)의 변화를 작가는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그 변화의 시간을 꾸준히 흑백 필름 카메라에 기록했다.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가 즐비한 시대지만, 픽셀로 이뤄진 디지털보다 필름만이 지닌 알갱이 입자의 느낌이 작가는 더 좋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작가가 깊은 감명을 받은 영국 런던 출신 사진작가 닉 브랜트의 영향도 있다. 닉 브랜트는 단렌즈로 흑백 사진을 찍는데, 마치 동물 초상화와 같은 화면이 인상 깊었다고. 바로 코앞에서 찍은 것과 같은 생생한 느낌이 작가를 압도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봤는데, TV에 나오는 다양한 야생 동물들, 그리고 그 모습을 담는 작가들의 모습도 보였죠.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저한테 인식된 것 같아요. 그리고 닉 브랜트의 동물 흑백 사진을 보고 특히 더 빠졌죠. 사진으로 이렇게 압도감과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구나 느꼈어요. 지금은 동물원에서 사진을 찍는데, 나중에는 본능이 축소된 곳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야생 동물을 찍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가장 큰 꿈은 북극곰을 찍는 것인데, 아직은 여건상 먼 일로 보이네요(웃음).”
동물원 우리 속 동물과
사회라는 우리 속 인간 사이의 연관성
처음 작가의 이야기는 동물원의 우리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쩌면 이 동물원의 우리 이야기가 현 시대를 사는 우리네의 모습에도 적용되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물원의 동물이 우리에 살듯, 인간 또한 사회라는 큰 우리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참거나, 화가 나도 웃는 등 본 마음을 숨겨야 할 때도 많다. 사회 우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그 가운데 자신들이 만든 또 다른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자기 연민도, 단순히 불만을 토해내는 것도 아님이 작가의 작업 방식에서 느껴진다. 현실 속 모든 우리를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포장되지 않은 그 우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cage)도 우리(we)도. 작가는 앞으로도 이어질 그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싶은 건 아닐까.
작가의 긍정적인 태도는 작가의 이전 작업인 ‘흉터’ 시리즈에서도 발견된다. ‘우리 사이’ 시리즈 이전에 몰두했던 작업이다. 사람들의 흉터와 식물을 함께 찍은 작업이었다. 흉터를 내보이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아 꾸준히 이어지진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작업에서 작가는 회복의 가능성을 담았다.
흉터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때가 많다. 이미 살이 죽어버린 곳에 남아버린 흔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생명력을 품고 계속 자라나는 식물의 이미지를 함께 배치한다. 흉터가 이미 끝나버린 것이 아님을,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가는 “나중에 여력이 되면 꼭 다시 한 번 찍어보고 싶은 작업”이라며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갈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눈길이 한 번 더 머무는, 그리고 한 번 더 사진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졸업 전시를 경복궁역 쪽에서 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던 중 한 사람의 발걸음이 제 작품 앞에 멈췄었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죠. 앞으로 또 어떤 사진을 찍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리 사이’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