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국제갤러리 부산, 글 쓰는 미술가 안규철 ‘열두 개의 질문’… “질문은 내가 미술을 하는 목표”

세계와 삶에 관한 질문의 방법으로서의 미술… 관객이 능동적인 관찰자가 되도록 자극하고 격려

  •  

cnbnews 안용호⁄ 2025.08.25 21:59:17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안규철 작가는 4년 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1991년 독일에서 시작해 30여 년 동안 해온 작업의 여정 중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을 모았었다. 이번 전시는 ‘열두 개의 질문’이라는 생소한 제목으로 기획됐다. 지난해 만든 신작을 중심으로 작가 작업의 근본적 요소이자, 미술을 하는 목표인 ‘질문’에 초점을 두었다.

“미술이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세계와 삶에 관한 질문의 방법으로서의 미술, 즉 사물과 나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이 제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본질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능동적인 관찰자가 되게 하고 생각의 주체가 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미술과 삶에 대해 품고 있는 질문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전시장 초입의 ‘honesty’’라는 라이트 박스에는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로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박이소 작가가 생전에 불렀던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을 새겨 넣었다. 지난해 연말 아마도예술공간에서의 전시 ‘12명의 안규철’은 개인전이지만 12명의 다른 작가가 전시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안규철 작가는 그 중 1명은 박이소 작가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난해는 박이소 20주기였다. 그래서 박 작가를 추모하는 방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을 이번 전시로 가져왔다.

그 옆, 글자로 만든 작품은 ‘무위자연’, ‘수신제가’라는 공자와 장자의 교훈적인 말을 약간 어긋난 방식으로 만들어 기표가 기의를 배반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맞은 편 추상적인 점 그림은 루마니아 출신으로 20세기 독어권을 대표하는 시인 파울 첼란의 시를 땡땡이 무늬처럼 그려 넣었다. 점 하나하나마다 글씨가 붙어 있고 읽으면 시가 된다.

 

‘11월의 날씨’, ‘7월의 날씨’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은 해당 월 특정한 시간에 하늘 색깔을 캐치해 물감을 섞어서 비슷한 색의 물감을 만들고 그것으로 차곡차곡 칠을 해나간 것이다. 회색의 다양함을 생명 회화로 승화시킨 듯 보인다.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 사진 제공=국제갤러리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 중에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문장 ‘글이 어디서 시작하고 그림은 어디서 시작하는가’가 들어있다. 또한 불어, 영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중국어까지 여러 나라의 말로 작가가 좋아하는 책에서 가져온 인용문들이 적혀있다.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글이 글로 읽힐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림으로 읽힌다. 글과 그림의 경계는 캔버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일까.

전시 전경. ‘예술로 가는 길’. 사진=국제갤러리

교통 신호, 교통 표지판으로 보이는 작품은 ‘예술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 표지판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깥이다. 예술은 캔버스 위에 있지 않고 캔버스 밖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다.

전시전경. ‘세 개의 수평선’. 사진=국제갤러리

‘세 개의 수평선’은 조소과를 나온 작가의 미숙함으로 인해 수평선이 수평이 아니게 그려진 것을 바로잡지 않고 기울어진 수평선에 맞춰 그림을 기울게 거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두 개의 그림은 기울게 걸려있고, 가운데 그림은 바로 걸려 있는데, 앞에 기울어진 발판을 놓아 올라가 바른 수평선을 보도록 했다. 작가는 이를 수평선은 항상 평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의 제기라고 했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전시실 뒤쪽에는 낡은 서랍장이 걸려 있다. ‘Metamorphosis Series-Drawers 변신 연작-서랍장’은 고장나 버리려 했던 서랍장에 다른 삶을 준 작품이다. 서랍장의 골조 뼈대를 뜯어 구조를 하나 만들고 집을 잃어버린 갈 곳 없는 서랍들을 천장에 매달아 설치 형식으로 전시했다. 미술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 미술 작품화되는 변환의 과정을 담은 것이다.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수많은 구슬을 엮어 만든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 시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만들며 아내가 고생을 많이 하며 협업한 작품이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두 개의 의자’는 돌아가는 같은 판 위에 있지만 두 의자는 각각 자기 방식대로 돌아간다. “광화문에 나가보면 깃발을 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모습이 꼭 이런 상태가 아닐까,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고민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순화해서 이런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안규철(b. 1955) 〈쓰러지는 의자 – Homage to Pina〉2024 Single-channel video, black and white, sound 6 min. 52 sec.Courtesy of Amado Art Space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마지막 벽에는 애니메이션 작업과 퍼포먼스 작업이 있다. ‘쓰러지는 의자’는 계속 쓰러지는 의자 위에 앉아 넘어지지 않도록 해보지만, 결국 사람과 의자는 함께 쓰러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사물과 나, 우리와 세계는 왜 이렇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의 스펙트럼을 좀 더 사유하는 미술로 확장하면 좋겠다는 안규철 작가의 바램이 깔려있다. ‘열두 개의 질문’ 역시 이러한 작가적 태도가 귀결된 전시로, 40여 년간 일관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질문하는 존재’로 살아온 안규철의 여정, 그 질문과 사유의 윤곽이 조용히 드러나는 자리다.

전시를 설명하는 안규철 작가.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안규철 작가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7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계간미술』 기자로 일했으며, 1985년에는 ‘현실과 발언’ 활동에 합류하였다. 1987년 유학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난 뒤, 그다음 해 독일로 이주하여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학부와 연구과정을 모두 마치고 1995년 졸업한 후 귀국해,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글 쓰는 미술가로 유명한 안규철은 한결같은 태도로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준비하고, 매일 글을 써왔다. 독일 유학 시절인 1990년대에 제작한 드로잉을 대거 전시한 경남도립미술관 《아카이브 리듬》(2023)에 이어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건축, 미술이 되다》(2023)에서는 흰 천으로 덮인 〈56개의 방〉(2023)을 통해 ‘방’ 시리즈의 새로운 변주를 선보이며 관객과의 지속적인 접점을 만들었다. 한편, 매일 아침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작가는 지난 부산 전시에 맞춰 출간된 『사물의 뒷모습』(2021)의 후속작으로, 『안규철의 질문들』(2024),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2025)을 펴냄으로써, 미술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작가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는 8월 22일부터 10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관련태그
국제갤러리  안규철  열두 개의 질문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